조지 오웰 저 <1984> 서평
“층계참마다 승강기 출입구 맞은편에 거대한 얼굴을 그린 포스터가 벽에서 지켜보고 잇었다. 그것은 사람이 움직이면 눈알이 따라 구르게 고안된 그림의 하나였다.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표어가 그 밑에 적혀 있었다.”
(책 ‘1984’, 조지 오웰 저)
미국에서는 문학 수업 시간에 조지 오웰의 ‘1984’를 꼭 한번쯤은 읽게 된다. 미국이 한창 소련과 대립하던 시기를 대표하는 소설로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소설이 다시 화제에 오르고 있다. 미국의 신문사 ‘The Atlantic’ 사설에 따르면, ‘1984’에서 묘사된 ‘일당독재 사회 속에서 제한된 권리만 지닌 채 통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 현재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 공감대가 사실 각 시대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견제하던 냉전시기에는 소련에 대한 비관적인 평가의 형태로 나타났다(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조지 오웰이 의도한 부분이다). 공산당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공산주의와 비슷한 제도를 갖춘 일당독재사회가 영국을 지배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를 논하는 가상의 대체 역사물 역할도 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포하고 평화의 세계에 대한 희망이 고조되면서 ‘1984’도 시대착오적인 소설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1984’가 비판하는 핵심 대상이었던 소련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민주주의가 완전히 자리잡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4’는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더욱 강력한 공감대를 갖는 소설이 되어 귀환했다. 물론 그 주체는 소련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그 정반대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파시즘이다.
우익이 극한에 다다른 형태라고 볼 수 있는 정치적 성향인 파시즘은 역사적으로 국가에 대한 전적인 충성을 전제로 독재자를 중심으로 국수주의적인 정책을 펼쳐왔다. 세계2차대전 당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베네딕토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대표적인 파시스트다. 이들 모두 반공(反共)을 명분으로 정책을 펼쳤으며,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무참히 억압하였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파시즘은 사그라들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나타났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미국 각지에서 벌여지고 있는 극우주의 운동이다. 백인우월주의, 반이슬람주의, 반페미니즘, 동성애혐오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표방하는 소위 ‘알트 라이트(alternative right)’ 운동이 격해지고 있다. 미국 나치당, 백인우월주의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 등 극우주의 단체의 활동도 트럼프 당선 이래 더욱 눈에 띄고 있다. 이들이 더욱 위험해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트럼프도 이들의 행동을 묵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1984’를 다시 읽으면 이들 속에 잠재된 심각한 위협의 정체를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가령 조미나 시인이 찾는 ‘1984’의 문학적 가치는 “어떻게 전체주의 사회에 의해서 인간성이 말살되는 암울한 상황이 전개되는가를 예지적으로 보여주어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고자 한 점”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전체주의의 모습이란 굳이 공산주의나 파시즘과 같은 단어에 한정되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 속에도 숨겨져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간성이 말살되는 암울한 상황”은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번 이 소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오랫동안 바라던 총탄이 그의 머리를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검은 수염 뒤에 어떤 미소가 감추어져 있는가를 알아내는 데 그로서는 40년이 걸린 셈이었다. 아, 잔인하고, 불필요했던 오해! 그 사랑의 품을 벗어난 고집스럽고, 제멋대로였던 망명자! 그의 코 양편으로 진(gin) 냄새가 밴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잘 되었다, 다 잘 되었다, 투쟁은 끝난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겼던 것이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던 것이다.”
(책 ‘1984’, 조지 오웰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