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 저 <십자군 이야기> 서평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군 원정이란 슬픈 영화와도 같다.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손아귀에서 ‘탈환’한 후 기독교의 성소로서 세운 ‘십자군 국가’가 수백 년의 길고 긴 투쟁 끝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일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모두 헛되어 버린 느낌이었을 것이다. 교황 우르바누스 3세는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살라딘이 끝내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죽었다(공교롭게도 십자군을 처음 제창했던 교황의 이름도 우르바누스였다).
그러나 패배를 맞이해야 하는 숙명 앞에서도 끝까지 적과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살라딘의 예루살렘 정복에 앞서 ‘십자군 국가’의 국민들을 지키며 낙심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간 이들이다. 마침내 이들은 ‘십자군 국가’의 국민들을 지키는데 성공한다. 어둠에서 반짝이는 빛처럼, 몰락의 운명 앞에서 쟁취한 뜻 깊은 성과였다.
이번 글에서는 제2차 십자군 원정 이후 살라딘의 예루살렘 정복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낸 ‘십자군 국가’의 영웅들을 소개한다. 올란도 블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잘 표현하고 있듯이, 자신의 안위보다 국민의 안위를 걱정했던 이들과 같은 숨겨진 영웅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싶다.
“열세 살에 왕이 된 보두앵 4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애처로운 마음과 함께 이 왕을 모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보두앵 4세의 정치, 외교, 군사는 이전 왕들 때와 달랐다. 적측에 살라딘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효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책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저)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는 어릴 적 나병에 걸려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예루살렘과 십자군 국가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끝까지 지켜내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나병으로 인한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가리기 위해 은가면과 하얀 망토를 착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 속에서 그가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등을 쭉 펴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백마를 타고 사방을 누비며 전장을 지휘하는 장면을 보면 후세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는 십자군 국가에서 태어난 현지인을 재상으로 임명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보다 실용적인 치세를 하고자 하였다(특히 당시 카톨릭 교회의 정치적인 간섭이 심했던 만큼 이와 같은 ‘세속인’의 임명은 카톨릭 세력을 견제하는 의미에서 효과적이었다). 또한 1177년, 살라딘이 1만 3천이라는 대병력을 이끌고 십자군 국가를 향해 이집트에서 북진하자 이에 맞서 기병 5백 명과 ‘템플 기사단’ 기병 80명만으로 살라딘군을 퇴각시키는 공적을 남겼다(몽기사르 전투). 그의 리더십은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보두앵 자신이 사망한 이후에도 이들 보좌관들이 계승하여 십자군 국가의 국민들을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는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이 충신에게, 로마로 가서 새로운 십자군의 파견을 요청하는 중책을 맡기려 했다.” (책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저)
티루스의 기욤은 십자군 국가의 재상으로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를 보좌한 인물이다. 그는 보두앵 4세가 어릴 적 그의 가정교사로도 있었는데, 라틴어, 프랑스, 이탈리어, 아랍어, 투르크어를 전부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며 팔레스타인 일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꿰뚫고 있는 유능한 지식인이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인용하고 있는 문헌 중 기욤이 남긴 자료들이 많으며, 특히 십자군 국가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시대인 1144년부터 1183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장본인이다. 그는 유창한 언어 솜씨로 팔레스타인 일대의 다른 세력들과 교섭하기 위해 외교관으로 수 차례 파견된 바 있으며, 보두앵 4세의 짧은 치세 동안 십자군 국가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 하였다. 그의 역사 기록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1183년에 끊기는데, 그 이유가 비극적이다. 1183년에 보두앵 4세는 기욤에게 로마로 가서 새로운 십자군 파견을 요청할 것을 부탁한다. 기욤은 서둘러 팔레스타인을 떠나 로마까지 당도하지만, 로마에서 프랑스로 향하던 중 소식이 끊기고 만다. 시오노 나나미는 기욤이 이동하던 중 아마도 도적의 습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십자군 국가의 재상으로서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역사서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당시 십자군 국가가 직면했던 수많은 고뇌와 고민을 오늘날의 연구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발리안 이벨린이 마흔일곱 살 나이에 예루살렘 방어의 선두에 서게 된 것이다. 이벨린은 아마도 이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책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인 발리앙 이벨린(올란도 블룸)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살라딘에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감동의 전율이 흐를 수밖에 없다. 사실에 기반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곁에는 보두앵 4세도, 티루스의 기욤도, 그 누구도 없었다. 자신과 60여명의 전사들만 있었다. 그 엄청난 무게의 외로움과 절박함 속에서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유럽인’들을 살라딘의 손아귀에서 구해낸다. 이것이 바로 보두앵 4세, 티루스의 기욤, 그리고 발리앙 이벨린이 이루어낸 노력의 산물이었다.
발리앙 이벨린은 야파 근처의 이벨린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로 중근동에서 나고 자란 ‘유럽인’이다. 따라서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며 지역 정세에도 밝았다. 그는 티루스의 기욤,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 토론 장군과 함께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를 보좌했던 주요 4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벨린 가의 장남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과 운이 뒷받침하여 자신의 영지를 획득하고 비잔틴제국의 황녀 마리아 콤네나를 아내로 맞이하는 영예까지 얻는다. 그의 최대 공적은 앞서 말했듯이 예루살렘 함락 후 모든 ‘유럽인’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살라딘의 대군 앞에서 예루살렘을 장장 일주일 동안 지켜내면서, 살라딘과의 회담을 실현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모든 ‘유럽인’들을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호소했다. 이에 감격한 살라딘은 자신의 재산을 내어주면서까지 노인, 미망인, 고아를 포함한 모든 ‘유럽인’들이 안전하게 퇴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이러한 행동은 이슬람교 ‘이맘’들의 불만을 샀다). 예루살렘 대주교도, 그리고 발리앙 이벨린 자신도 재산을 내놓아 결국 모든 ‘유럽인’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안전하게 예루살렘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런 배경 지식을 가지고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다시 보면 어떨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책을 봐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영화를 재미나게 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