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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로 Feb 05. 2023

<바빌론>, 당신에게 재밌을지 알려드림

이 영화에 열광하기 위한 전제조건들

<바빌론>에 열광하는 이 홍보문구에는 사실 여러 전제지점이 있다


여기까진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이 영화의 전반부까지는 비교적 호불호가 갈릴만한 부분이 적다.

 

일단, 여기 파티씬은 '진짜'다. 비교적 폭넓게 알려진 최근 영화중엔 뭐가 있을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위대한 개츠비> 정도? 별개의 작품에서 다른 맥락에서 등장하는 씬이라 곧바로 비교는 어렵겠으나 관객의 입장에서 느낄 비주얼에서 <바빌론>의 파티는 <위대한 개츠비>이나 <그레이트 뷰티>에서 나오는 파티를 압도하는 화려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미적 쾌감의 절정은 막상 파티 도중이 아니라 파티가 다 끝난 이후에 온다. 파티 후의 어떤 장면은 일부러 필름촬영했다는 말이 바로 신뢰가 갈 정도로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난 와하며 입벌리며 봤다.

그리고 영화제작 장면도 이에 못지 않다. 왁자지껄한 엑스트라 군중들에서부터 어떻게든 뜨기 위해 몸부림치는 배우의 처절함까지 이게 한 영화를 목표로 모인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정신을 빼놓으며 쉴새없이 몰아친다.


파티씬이든 영화촬영 장면이든 버라이어티, 스펙타클 이런 말이 어울린다. 이거는 이야기구조나 플롯 이런거 고려없이 눈호강만으로도 볼만하다 느낄 것이다. 물론 여기도 모든이들이 좋아하기만 할 거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뒤에서 좀 더 이야기하겠지만 '과하다'싶은 부분들이 있다.



왜 이토록 '과한가'?


데미언 셔젤은 왜 이 영화를 이렇게 '과하게' 만들었을까? 이 영화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가득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너무 천박하며 추하고 역겹고 끔찍하게마저 느껴질 장면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굳이 왜 이런 장면들을 넣은걸까.


여러 홍보물에서도 이야기되었듯 이 영화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를 다룬다. 본격적인 고전기로 돌입하며 체계적 제작시스템이 자리잡고 우리들이 오늘날 알고 있는 할리우드로 정립되기 시작하기 전, 이른바 '전설의 시대'가 <바빌론>의 주요 배경이다. 홍보인터뷰에서 셔젤은 이 시기가 익히 알려져있는 것처럼 낭만의 시대라기보다는 미친듯이 영화만들고 미친듯이 밤새서 파티에서 놀아제끼고 미친듯이 도박과 술에 빠져서 보내는 이가 수두룩한 그런 난장판과 열광의 시대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이 시기를 낭만의 시대로 다룬 영화는 이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하나 있었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고.

https://youtu.be/D1ZYhVpdXbQ?t=60

이게 1952년작인데 이걸 그 시대에 찍었다는게 실감이 안될정도로 여전히 대단히 빼어나고 세련된 뮤지컬 영화다. 지금도 아무생각없이 춤과 노래를 즐기며 볼 수 있을정도. 저작권기간도 지나서 무료로 풀려있다. 

https://tv.naver.com/v/14059740


<바빌론>이 다루는 시대와 겹치는 이 시기를 <사랑은 비를 타고>는 그 일면만 보여준다 해야할까. 셔젤의 말의 행간을 <바빌론>이 왜 과한지와 관련지어 읽어보면 이렇게 들린다. "실제로 그 시대는 미친시대였어." 이걸 환상을 넣어 아름답게만 다루기보다는 이렇게 과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그려내야 이 당시의 분위기가 제대로 전달될거다. 그 말은 맞긴 하다. 셔젤이 이 시기를 조사하면서 이때 사람들은 대체 언제 잠을 잤나 생각했다고까지 하니까.


아무리 우아하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든다한들, 그걸 만들어내는 과정도 과연 그러할 것인가?

시대배경에 대한 고려없이 단순히 생각해도 그러하지 않으리라는 쪽에 손이 간다.


<바빌론>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꿈에 미쳐있고 세간의 관심과 명성에, 자기 스스로의 열정에 미쳐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영화'답게 <바빌론>의 주인공들이 다들 궁극적으로 미쳐있는 건 '영화'다. 우리가 영화 스크린을 바라보며 기대하는건 아름다움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모인, 인간의 열망과 욕망이 격렬히 교차하는 공간이 과연 아름답기만 할 것인가라며 반문한다면 누구도 그리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제작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연출이나 배경, 캐스팅마저도 바뀔 수도 있는 그런 날것의 공간에서 숱하게 좌절과 열광, 우울과 기쁨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 상황에서도 멘탈을 유지하며 무언가라도 만들어 완성물로 내려면 평소에는 그런 감정을 어떻게 풀어내야만 하는걸까. 그게 술이든 도박이든 파티든 성(性)이든 어딘가에 미쳐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걸 생각하며 이 영화의 '과함'을 보았다.(물론, 스포가 될까봐 여기선 차마 얘기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한편으론, 미(美)와 추(醜)가 그리 거리가 멀기만 한 것인가. 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들은 극단적이고 난장판인 추함과 함께 어우러졌기에 그렇게 환상적으로 그려질 수 있진 않았는가. 이 영화의 추한 장면들이 역겹게마저 느껴지는것은 우리가 스크린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아름다움과는 너무나도 대비되어서는 아닌가. 확실한건 이거다. 미와 추의 이런 극단적 어우러짐은 한데 모여 미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토록 아름다고, 또한 그토록 추할 수 있는 건 다들 미쳐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건, 이 영화에서의 미와 추의 어우러짐이 엉망진창으로 보일지언정 실제로는 대단히 치밀하게 짜여져 화려함으로 꽃피고 있다는 것이다. 그 화려함은 그 '과함'을 감내하고라도 일정한 영화적 쾌감을 많은 이들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건 그 이후부터다.



극호 혹은 불호가 되는 지점 - 온전한 감상을 위한 전제조건


후반부를 보다보면 더 명확히 다가올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그 지점이 이 영화에 대한 엇갈린 감상을 낳는 가장 큰 요인이다.


<바빌론>을 극호하려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일 필요가 있다. 특정한 한 작품이 아니라, 요 몇년새의 특정 몇몇 작품이 아니라, 혹은 로맨스라거나 블록버스터라는 특정한 종류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라는 장르 자체, 보다 근본적으로는 '영화'가 거쳐온 그 시간적 궤적에 더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되기 쉽다. 그러니까 그럴수록 이 영화에 열광하는 '바친자(<바빌론>에 미친 자)'가 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극호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에 만족하는가를 판별하기 위한 한 기준은 옛 고전영화에 대한 감각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익숙한 형태의 총천연색 첨단 영화가 아닌, 고전영화 예를 들면 흑백영화, 무성영화같은 거라도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있는가? 보면서 경탄하거나 재미를 느낀 경험이 있는가? 어느 폭의 감수성과 시야로까지 '영화'를 바라보느냐의 차이이기도 하다. 이걸 가늠해보기 위해 접근해보기 가장 쉬운 건 영화 <아티스트>(2011)일 것이다.

영화 <아티스트>(2011)는 이렇게 되묻는 영화기도 하다. 정말 옛날영화, 심지어 흑백영화, 무성영화 재밌나요? 극호!


특정 한 편이 아니라 '영화'라는 장르에, 그리고 그 궤적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바빌론>도 높은 확률로 극호일거라 본다.


이렇지 않다면 <바빌론>은 불호가 되는건가요 한다면 나는 극호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가 많아질거다 말하겠다. 불호일 이유는 명백하다. 영화는 모름지기 직접적인 쾌감만을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주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바빌론>의 특정한 지점들은 분명히 매우 지루하고 불필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심지어 몇분마다 시계를 보면서 저게 언제 끝나지 싶은 고통과 인고의 시간일수도 있다.

특히 마지막의 몇몇 컷씬은 '영화'와 '영화사' 자체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없이는 내가 보고 있는게 대중영화인가 전위예술인가 느껴질 부분마저 있다. '뭥미?' 하게될거다. 마지막에 벙쪄서 이 영화 전체가 도대체 뭔 얘긴지 모르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는 얘기다.


제작사와 감독의 담대한 도전이라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냥 보러가고 싶다면?


난 이게 대중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업성에 준할만한 비용을 들인 비싼 예술영화지.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제작사 로고를 보자마자(어떤 영화보다도 <바빌론>은 영화초입과 엔딩크레딧 끝에 나오는 제작사 로고를 볼 가치가 있다 단언하고 싶다.) 이 영화는 무조건 여러번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무척이나 열광하며 본 사람이 나임에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작년에 봤던 조던 필의 <놉>도 그랬었다. 분명히 재밌고 잘만든 영화지만 대중영화로 나온건 아닌거 같은. 그래도 <놉>보다는 분명히 허들이 낮 보인다.


그럼에도, 당신이 <바빌론>을 어느날 문득 꼭 보러가기로 마음먹었을수도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공감해볼만한 지점을 만들어가는 것도 괜찮겠지. <열차의 도착>으로 대표되는 영화의 탄생에서부터 할리우드 고전시기로 이어지는 영화의 초기 시대사를 조금 알아보든가. 아니면 <사랑은 비를 타고>나 <아티스트>를 미리보면서 옛 영화의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거다.


그런데 영화 한편 보자고 이걸 다 하라고? 무엇보다, 현대인은 바쁘다. 그럴 여유가 없다. 쉬기 위해 보러가는 영화를 보려고 굳이 공부를 하고 다른 영화를 다보기에는 물리적 시간에서든 정신적으로든 쉬이 여유를 내기 힘든게 현대인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볼만한 대안이 있다면 그건 보다 넓은 맥락하에서 공감을 해볼만한 지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꿈과 열정에 대한 것이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여러 우려에도 이 영화를 굳이 보러가기로 한다면 감독이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의 데미언 셔젤이라는 기대도 분명히 작용했으리라 본다. <바빌론>이 어떤 시기를 배경으로 하든, 영화에 대한 영화이든간에 다 떼어놓고 여기서의 인물들은 꿈과 열정으로 가득찬 사람들이다.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에서의 인물들이 그러하듯이.


보다 넓게보자면 <바빌론>도 분명히 꿈과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열정에 불타봤던 사람이라면 울컥할만한 대목이 있다. 그걸 이루는 데에 성공했건 아니건간에 그 시절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평생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천착해서 이 영화를 바라봐보면 어떨까. 지난 '전설'의 시대 할리우드는 지나갔지만 그 시절은 분명히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듯이 말이다.


셔젤의 최고 출세작, <라라랜드>를 보았던 이라면 알 것이다. 이런 걸 다루는데에 있어서 셔젤이 얼마나 천재적인지. <바빌론>도 분명 그 기대를 저버리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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