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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로 Mar 24. 2023

영화광이 아니어도 <파벨만스>가 감동일 이유

누구나 어느 가족이나 그러하리라

<파벨만스>의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아마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을 감독. 그의 대표작은 대단히 많은데 작품 나열만으로도 한두문단은 너끈히 채울 수 있을 정도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사람도 그의 이름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유명세만큼이나 그의 영화는 호불호를 잘 타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작든 크든 무얼 소재로 했든간에 누구나 보아도 일정 이상은 재밌다. 믿고볼만하다는 소리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그의 영화가 개봉할때면 홍보포스터에는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이 부각되어 박히곤 한다.

영화를 다보고 나면 이 포스터가 조금은 더 감동적으로 느껴지리라.


그렇다면 이번작 <파벨만스>는 어떠한가? 믿고볼만한가? 답은 당연히 예스다. 과장이 아닌데, 시사회에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나왔다. 어디 뭐 영화제가 아니다.(영화제에서야 영화가 끝날 때 스크린에 대고 박수를 치는게 문화적 관습같은 거지만.) 그럼에도 나부터도 이거는 박수를 쳐야한다 생각하고 있었다만 그런 생각을 나만 했던게 아닌가보다. 영화제가 아닌데도 영화 상영 후 박수소리가 나오는걸 본게 <다크나이트> 이후로 처음이던가. 영화를 일정 이상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내가 겪은 바에 다들 공감하게 될 것이며 분위기가 엄하여 차마 혼자서라도 그렇게 굴지 못하겠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얼마든지 박수를 치게 될 것이라고 확언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그러한가요? 라고 묻는다면. 음... 글쎄다. 필자는 이걸 꽤나 재밌고 감동적으로 가슴 뭉클하게 본 사람인대도 그렇다고 단언하긴 힘들다고 말해야만 하겠지. 왜냐하면 이 영화는 상당부분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엄밀하게 보자면 '어느 한 시네필에 대한 영화'기 때문이며 시네필이어야 더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강하게 깔려있는 영화다. 그래서 <파벨만스>는 아마 스필버그의 영화치고는 꽤 좁은 범위의 사람에게야 온전히 호소력을 발휘하리라 본다. 특히 결말부에 특정 부분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영화광이 아닌 사람은 <파벨만스>는 믿고 걸러야 합니까? 단연코 그렇지 않다는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익히 홍보되었듯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본인에 대한 전기적 영화다. 정말 그렇다.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영화를 좋아하게 되며 꿈을 키워가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파벨만스>라 쓰여져 있는 이 영화의 제목을 <스필버그스>라 읽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파벨만>이나 <스필버그>가 아니라 왜 <파벨만>, <스필버그>라 할까.


왜냐하면 이 영화는 영화광이던 본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상으로 스필버그, 스필버그들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게 반드시 행복의 공간인가? '행복한 가족'이라는 이미지는 매혹적인 이미지다. 그런 이미지에 어울리는 실제 가족이 있다해도 그런 상태가 계속 '행복하게만' 이어질 수는 없다. 인간 삶이 근본적으로 그러하듯 말이다. 때로는 징글징글하거나 넌덜머리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같이 살아간다. 그게 환상이나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가족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그런 감정이 담긴,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애정을 담은 자기 자신의 가족에 대한 회고작이기도 하다. 아니, 나는 좀 더 과감하게 스필버그 자신에 대한 회고작이라기보다 스필버그스라 할 그의 유년시절 가족에 대한 회고작이라 보고 싶다. 나는 영화상 어느 시점까지는 더 주목해야 할 주인공이 어린 스필버그가 아니라 그의 가족 중 하나라고 봤으니까.(어느 가족인지는 스포가 될 것이기에 이렇게만 남긴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럴수밖에 없었으리라. 가족이 사랑스럽고 자신의 꿈을 키워간 아늑한 둥지였지만 동시에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부모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겠는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식에 대해 가슴이 찢어질테니.(자식이 얼마나 나이를 먹었건간에 그러하다.)


영화를 보다보면 스필버그가 우리가 아는 '스필버그'가 된 것에 그의 가족이라는 둥지가 무관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이 영화가 보편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차원이 있는데, 누구나 이 영화를 보면서 현재의 자기자신에 대해 그렇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어떠했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가족이라 부를만한 곳이 어떠했건 그 유년기의 둥지가 지금 시점의 자신이라는 현존재를 만들었음을 뚜렷이 자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바로 그 지점을 영화 <파벨만스>, 아니 <스필버그스>가 주는 근본적인 감동으로 느꼈다. 그렇기에 우리는 <파벨만스>에서 우리가 익히 알아온,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던 그 스필버그가 우리의 기대처럼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거다.


*이 글은 키노라이츠의 시사회(https://m.kinolights.com/event/747)를 통해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파벨만스>를 관람하고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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