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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로 Aug 15. 2023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이런게 영화 시사회지

재미를 느끼려면 필요한 것들

*이 글은 영화 커뮤니티 '무코'에서 이벤트로 열린 슈아픽처스의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시사회에 참석한 후기로 작성되었다.


시사회에 간 이유는 공짜영화라서?도 있겠으나 슈아픽처스라는거도 있었다. <행복한 라짜로>, <교실안의 야크>, <풀타임>,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에 이르기까지 '믿고 본다'는 말을 들음직한 영화 배급사다. 

그동안 슈아픽처스가 수입하여 배급한 영화들. 면면을 보면 아는 사람은 인상깊게 기억하는 영화들이 많으리라.

https://movie.daum.net/production?productionId=2376#type=distribution


특히, 이곳에서 올해 들여와 개봉한 <말없는 소녀>를 개봉 후 뒤늦게 보았었는데 인상깊게 남은 조용한 영화였다. 올 해 본 작품들 중에 유일하게 상영 내내 딴짓 전혀 없이 스크린에만 눈을 고정해뒀었다. 


그래서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도 시사회로 좀 더 일찍 접하고 싶었다.


보통 이런 영화를 시사회할 때는 아무 설명없이 영화만 틀어주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웬걸 배급사 대표가 나와서 상영에 앞서 소개를 짧게 해줬다. 

원래 베니스 영화제 때부터 눈여겨 봤었는데 이제야 들여왔다고...


그러고는 예상치 못한 손님도 있었는데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알려진 장철수 감독이었다.


이런게 영화 시사회지. 


며칠 전 갔던 다른 시사회에서 엔딩의 여운이 중요한 영화임에도 엔딩크레딧 올라가는 중간에 상영을 끊는 만행을 겪어서 그랬을까. 유달리 이렇게 느껴졌다. 성의없음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는 시사회 상영 행태에 그땐 좀 기가 찼었다. 주최측에서 그냥 돈안되는 공짜 상영회라고만 생각해선가. 같은 수입영화 시사회인데 왜 이리 차이나는지. (그게 무슨 영화 시사회였는지 굳이 밝히진 않겠다.)


아 참, 이걸 보러 온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저기 나온 주연배우다. <6번 칸>의 그 남주, 유리 보리소프다. <6번 칸> 정말 볼만했었지. 거칠면서도 순박한 그래서 따뜻하기도 한 그 영화. 그때의 연기가 깊이 남았었지. 개인적으론 <비포 선라이즈>와는 다르게 비튼 멋진 기차 로드무비라 생각한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를 다 본 입장에서 남은 감상은 이 영화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몇가지 염두에 둬야 할 지점이 있다는 것.


그 중에 하나는 역사적 배경이다. 

영화의 사건은 1938년의 레닌그라드에서 일어난다. 레닌그라드는 오늘날 우리가 '상트 페테르부르크'라 부르는 도시이다. 소련 전의 제정 러시아가 서구화를 기치에 걸고 수도로 만든 도시. 영화상에서도 그걸 의식하는듯한 부분이 있다만, '~부르크'는 독일어식 지명이고 '~그라드'는 러시아식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소련이 만들어지고 그곳은 '레닌그라드'가 되었다. 

그리고 1938년은 2차 대전이 터지기 불과 몇년전이다.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집권하고 1937년부터 이때까지 러시아는 대숙청 시기로 유명하다. 고위 공직자부터 민간인까지 실제로 체제에 반하든 않든 의심될 요소가 있으면 모조리 고문과 처형이 가해지던 시기. 이 영화는 정확히 이를 배경으로 한다. 


또 염두에 둘 만한건 기독교적 메타포가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자신이 제대로 살아왔나. 이 영화상의 주인공도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런 궤적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평가에 주로 깔려있는건 기독교적 모티브로 보인다.(참고로 필자는 종교가 없다.) 

기독교의 코어가 되는건 무얼까. 빼놓을 수 없는 건 대속과 용서일 것이다. 죄 지은이 어찌할 것인가. 볼코노고프 대위가 갈구하는 건 뜻밖에도 '용서'다. 이 영화에선 내내 그 메타포가 짙게 드러난다. 


영화를 다보고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던 예수를 대신해서 잠시 그 짐을 지던 카르타고 출신의 시몬이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라는 서양회화사에서의 오랜 테마가 생각나게 될 것이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그밖에 기억에 남던 건, 


용서를 갈구하는 과정에서 당시 대숙청에서 흔히 행해지던 취조와 고문을 주인공은 '특별한 심문절차'라 자주 칭하고는 한다. 그런데 볼코노고프 대위가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과정도 여러모로 '특별한 심문절차'라 느껴졌다. 대숙청의 '심문절차'가 역전된 느낌이었달까. 스포가 될까봐 길게 적기는 힘들어서 여기까지만.


그리고 볼코노고프 대위의 '탈출'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탈출'은 어디까지일까. 특히 결말에서 이 '탈출'의 외연이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도 마땅히 '탈출'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에필로그처럼 나오는 장면에서 어디론가 나가는 이들도 등장하지만 그게 '탈출'은 전혀 아니지. 


2시간 내내 앉아있는게 난이도가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흥미롭게 보려면 이런 지점들에 대해서 생각해 필요는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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