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냥식 Nov 29. 2020

고양이는 밤새워 문 밖에서 울었다

1-7. 고양이 털 그리고 고양이 분리불안


아내는 위생에 민감하다.


아내는 깊게 잠에 빠졌다가도 내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반쯤 깨서 손을 씻으라는 말을 잠꼬대에 섞어서 했다. 꼭 그렇게 "뽀독뽀독"이라고 했기 때문에 가끔 아내를 뽀독이라고 불렀다. 단순히 잠귀가 밝은 탓도 있지만 위생에 대한 강박이 있기 때문에 특히 날 선 반응을 했다. 


결혼 전부터도 아내는 위생관념이 남달랐다. 연애할 때, 우리 집에 아내가 갑자기 오는 날이면 보이지 않는 전쟁이 내 자취방에서 일어났다. 현관에서 침대까지 헨젤과 그래텔의 과자처럼 하나씩 뿌려둔 온갖 빨래는 한 번에 세탁기에 쓸어 넣어졌고 이불은 군대에 돌아온 것처럼 칼같이 빠르고 날카롭게 제자리를 찾고 쌓인 설거지 거리들은 물 반 세제반 상태로 갈아낼 것처럼 빠른 속도로 문질러져 개수대 옆에 쌓였다. 빠른 정리를 하고 나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겁나서가 아니라 정말 힘들어서 말이다. 아내는 주로 지하철역에서 연락을 했고 역에서 우리 집까지는 10분 정도 걸렸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은 그 시간 안에 마무리되어야 했다. 가끔은 공동 현관까지 와서 벨을 눌러서 알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땐 1분 안에 모든 일이 마무리돼야 했기 때문에 빨래와 대충 헹궈진 설거지로 대신했다. 아내, 당시 여자 친구가 크게 나무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탁월한 위생 레이더에 내가 불결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었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쓸고 닦고 손으로 눈으로 먼지를 확인했다.




키우는 고양이라고 괜찮을까?


고양이를 키울 때 내가 가장 걱정한 것도 이 점이었다. 

'아내가 고양이 털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양이 화장실의 날리는 먼지를 참을 수 있을까?'

'수십 번 청소하고 수백 번 확인하는 건 아닐까?'

잠깐만 상상했는데 내 심장이 얼어붙은 감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 고개를 저었다. 먹어보지 않아도 확실히 아는 맛이 있다. 이 감 맛은 떫은 게 아니다. 먹을 수 없다.


임보를 했던 모모는 그다지 털이 많이 날리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시로 털은 엄청나게 날렸다. 시로의 하얀 털은 민들레 홀씨보다 가벼워서 작은 바람의 움직임에도 쉽게 날아올라 공기 중에 떠다닌다. 커튼을 걷고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엄청난 양의 털에 놀라고 방금 전까지 깨끗했던 티셔츠가 털 투성이가 된 것에 다시 한번 놀라야 했다. 한 번은 아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시로의 작은 흰털이 눈에 붙어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털 때문에 한 번씩 예민해질 때마다 집에 공기청정기를 하나씩 늘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1년에 한 대씩, 총 3대까지 늘어났다. 




"침실은 안돼."


아내는 잘 때도 감각이 모두 열리는 타입이다. 털과 수면방해, 두 가지 이유로 신혼집의 작은 침실을 시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시로가 들어오면 시트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내고 바닥을 쓸었다. 다행히 가장 작은 방을 침실로 했기 때문에 잘 때만 사용했다. 밤이 되면 우리 부부는 시로에게 인사를 하고 호그와트로 향하는 킹스크로스 역의 3/4 승강장으로 들어가듯이 방문 안으로 빠르게 밀고 들어갔다. 에어컨이 거실에 있어서 방문을 닫으면 더운 여름 공기 때문에 괴로웠다. 오직 부엌 방향으로 난 방충망 달린 작은 창에 의지해서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곧 다가올 열대야의 계절이 두려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면 거실 스크래쳐에 앉아 있던 시로가 기지개를 하면서 천천히 걸어와 다리에 몸을 부볐다. 이것이 우리의 인사다. 그렇게 생각했다. "굿모닝. 집사님들? 잘 잤나?"라는 인사로 들렸다. 그 스킨십이 기분 좋았고 누군가 아침을 특별히 맞아준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건 단 며칠 뿐이었다.




"열어주세요"


시로가 온 지 열흘쯤 되던 날이었다.

잠을 자려고 문을 닫았는데 잠에 들락 말락 할 때쯤부터 시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옹~'

시로는 목소리가 아주 곱다. 아내와 나는 종종 시로가 사람이었다면 가수였을 거라고 했다. 그것도 굵고 멋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조성모나 김종국 같은 미성의 얇고 아름다운 소리의 가수 말이다. 목소리도 다양해서 대답할 때 내는 간드러진 소리, 기분 좋을 때 내는 질문을 하는 듯한 악센트가 있는 소리, 졸릴 때 내는 앙탈 부리는 소리에 가끔 "엄마?"처럼 들리는, 사람에게 다가올 때 내는 기분 좋은 소리도 있다. 그런데 이 날 내는 소리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나옹~~~" 구슬펐다. "나옹~~~~" 그리고 길었다. 분명 부르는 소리다. 강아지였다면 하울링으로 들릴 것 같은, 슬프게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하지?", 눈을 감은 채로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잠시 동안 대답이 없었다. 생각 중인 것 같았다.

"일단 좀 둬보자.",라고 말을 했더니 아내가 동의했다. 방에 들일 수 없기 때문에 안된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옹~. 나옹~' 시로는 그칠 줄을 몰랐다. 한 10분 정도를 한 서린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일단 열어보자."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문을 열자마자 시로가 침대 위로 뛰어올랐다. 아내가 안된다고 저지를 하려고 했는데 시로가 너무 기분 좋은 소리로 골골대며 행복의 몸짓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로는 이불 위에 올라와 행복한 몸짓을 하며 행복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내는 애정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뿐이다.', 아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한 번 열린 빗장은 다시 잠그기 쉽지 않다. 시로는 밤마다 문 밖에서 울었다. 처음에는 습관이 들 것이 무서워서 10분이 아니라 30분을 넘게 버텨봤다. 하지만 30분 정도가 지나자 새로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옹~'에 이어 -득득득-, 문 긁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시로가 앞 발톱으로 문을 열어달라고 문을 긁기 시작한 것이다. 울음소리 까지는 어떻게 버텨보려고 했는데 문 긁는 소리는 참기 어려웠다. 게다가 묘하게 일정하게 리듬감도 있었다. 이 가수가 천직일 것 같은 고양이 같으니...

'나옹~, 득득득, 나옹~, 득득득, 나옹~, 득득득' 

일정하게 들리던 울음소리와 긁는 소리 간에 간혹 리듬이 틀리면 더 신경이 쓰였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버려졌던 아이. 우리가 데려와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아이. 난데없이 수술대에 다시 올라 무서운 일을 겪었던 아이여서 그런지 유대가 생기기 시작한 우리와 떨어진 시간이 아이에게는 외롭다기보다는 무서운 시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들여보내 달라고 울고 문을 긁고 있을까?

시로는 매우 빠르게 우리와 유대관계를 가지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분리불안


내가 생각한 고양이는 도도하고 개인적이어서 마치 동거인 같은 삶을 사는 동물이었다. 강이지와는 다르게 혼자 있는 것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모모의 경우는 그런 경향이 굉장히 심했다. 그래서 '집사'라고 부르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시로의 행동은 의외였다. 특히 우리와 함께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여서 더욱 의아했다.

고양이 분리불안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생각보다 상세히 적혀있었다. 고양이도 분리불안이 있다. 고양이마다 다르지만(냥바냥) 주인과의 유대관계가 깊을수록 다양한 형태로 분리불안이 발현된다. 배뇨를 이상한 곳에 하거나 토하고 심할 때는 스스로 자해를 하기도 한다. 물론 시로처럼 끊임없이 우는 케이스도 있었다. 단 시간 안에 시로는 우리에게 깊은 유대를 느끼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것이었다. 시로가 우리를 필요로 한다.

결국 우리는 단 3일 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냥 청소를 잘하자...", 어차피 도리가 없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시로와 함께 자기 시작했다. 막상 허락하고 나니 별 일 아니었다. 물론 이불은 좀 더 자주 빨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 더 많았다.

시로는 특히 이불속 나와 아내 사이의 틈에 들어와서 자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아니면 이불 위, 벌려진 내 다리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들어와서 잤다. 한 번은 자고 일어났는데 시로 코가 눈 앞에 있어서 놀란 적도 있었다. 

우리는 침실에 고양이의 흔적, 털이 날리는 것을 막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에어컨 바람 안에서 잘 수 있게 됐다. 어느 순간, 아내는 고양이 털에 대해서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했다. 가족은 위생에 대한 신념보다 강하다. 고양이가 가족이 될수록 고양이의 흔적은 아내에게 당연한 옵션이 되어갔다.

결국 시로에게 침실을 허락했다. 허락하고 나니 별 일 아니었다.



"고양이를 키우고 결벽증이 다 고쳐졌어요."


요즘 아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시로의 털을 시작으로 아내의 결벽증은 많이 사라졌다. 위생은 당연히 신경 쓰고 집도 자주 큰 청소를 하고 싶어 하며 여전히 정리를 좋아하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에 대해서 집착하던 성격은 거의 사라졌다. 본인도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편했던 것 같다. 이건 나에게도 매우 큰 장점이었다.




고양이도 외로워한다.


그리고 우리는 시로가 혼자 있는 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아침이면 모두 회사로 떠난다. 혼자 있는 시로는 어떨까? 고양이는 혼자 있어도 된다는 생각도 이미 깨졌다. 고양이는 혼자 있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표현방식이 강아지와 다를 뿐이다. 함께 있을 둘째를 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둘째 벼락이(구레)가 왔다.



시로는 이불을 너무 좋아한다.


작가의 이전글 약 못 먹는 고양이 어떻게 하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