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다시 1)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다

by 정성훈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모 플랫폼에서 여행기를 모집하고 있다며 그녀가 알려왔다. 뭔가 쓰고 싶다는 마음은 마음 한켠에 항상 있었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 응모해 보기로 했다. 마침 친구들과 일본의 오사카-고베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점이라 그 여행의 감상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싸이월드, 페이스북 시절부터 내 생각이나 감정을 일기처럼 짤막하게 피력하거나 서술하는 형식의 글은 자주 써봤지만 문학적으로 작품성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갈피가 잡히지 않았고, 어찌어찌 다 쓰고 난 후에도 나름 예쁘게는 쓴 것 같지만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위화감이 가시지 않았다.



낱개 구름 띄운 연한 하늘색 하늘 아래로 햇살이 너무 따가워 튕겨내듯 반짝이는 윤슬, 그리고 그 옆으로 깎아 세운 작은 돌담 위에 늘어진 이국적인 처마 끝.

버스에서 막 내려서 본 아리마 온센 마을의 첫 풍경이었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 오르막길을 따라 옆으로 줄지어 있는 예스러운 가옥들의 정취가 퍽이나 어색하면서도 잘 어우러졌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졌어도 을씨년스럽지 않고 반듯반듯 자로 잰 듯하면서도 글자모양처럼 각박하거나 삭막하지 않은 그런 일본만이 주는 정갈함이 있다.

갈증을 잊게 하는 한 모금의 나마비루도 부산에 살았다는 현지인 모녀가 하는 철판구이 요릿집도 대욕장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정경도 모두 그립지만, 그곳을 그립게 하는 진짜 이유는 그런 감상들인 것 같다.

군데군데 닿지 못한 이곳저곳을 반듯반듯 디딤돌 삼아 디뎌가며 글자모양처럼 몽글몽글한 그런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여행할 이유로 충분한 게 아닐까?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않나?', '아냐, 아무래도 임팩트가 부족한 것 같은데.'


결국 찜찜한 마음으로 제출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은 마음에 방탄복을 한 겹 두른 거였다. 최선을 다해놓고선 인정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 경험, 스타일 운운하며 방어 기제를 펼쳤다. 그리고 역시나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고 아무도 몰래 작은 좌절의 심 하나가 내 마음에 박혔다.


뭔가를 쓰고 싶지만 뭘 써야 할지를 몰랐다. 정확히는 누군가 읽어주는 뭔가를 쓰고 싶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랐다. 약 6년 전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처럼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에서 지속성 있게 무얼 쓸 수 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지금은 다시 해외에 나와 있는데도 시작이 쉽지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 온 지 며칠 되던 날 불쑥 그녀가 말을 건넸다.


"이제 다시 글은 안 써?"


물론 예전 남미, 아프리카처럼 미지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에피소드가 계속 나오면 좋겠지만, 당신의 글을 읽고 좋아해 주던 사람들이 정말 그런 에피소드가 재밌어서 읽은 걸까? 당신의 글 자체의 매력이 더 큰 게 아닐까?


애써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 없이 그저 쓰고 싶은 걸 쓰라는, 내가 글을 쓰는 모습이 좋다는 그녀의 말에 힘입어 다시 한번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끄적여보려고 한다.


나는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고, 두 번째 세계여행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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