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는 말까지가 관계다

황규관, <마침표 하나>

by 한가온

관계는 시작보다 끝이 더 어렵다.

시작에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안부를 묻는 인사, 별 의미 없는 이모티콘, 다음 만날 날을 정하는 대화.

그러나 끝은 대개 그렇게 오지 않는다. 어떤 관계들은 예고 없이 사라졌다.

그러면 비로소 알게 된다. 싸운 적도 없고, 다툰 적도 없지만 그래도 이 관계는 거의 끝이 났다는 걸.

그때 느꼈던 감정은 버려졌다는 분노라기보다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문장 속에 홀로 남겨진 느낌에 가까웠다.


황규관은 그의 시 '마침표 하나'에서 삶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마침표 하나로 완성되는 문장"을 말해 준다. 비문으로, 미문으로 남겨두지 않고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을 말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좋았던 기억이 많았어도 그 마지막이 침묵이면, 남겨진 사람의 삶에는 늘 문장이 하나 남는다. 끝나지 못한 문장.


돌이켜 보면, 내게 상처였던 일들의 대부분은 '이별' 자체가 아니었다. 문제는 끝났다는 사실보다, 방식이다.

말 한 줄 없이 사라진 사람들, 끝났다는 말조차 남기지 않은 채 나만 홀로 이전 문장 속에 머물게 했던 관계들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보게 되는 일.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야 느꼈다. 끝났다는 사실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혼자만 결말을 짐작해야 하는 입장으로 남는 것이었다.


한때는 미래를 약속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의 눈과 입술 끝엔 사랑이 딸려왔던 사람.

어느 날부터 답이 늦어지고, 그다음엔 통째로 사라졌다. 나는 이유를 몰랐고,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쪽이 멋대로 문장을 닫으면 다른 한쪽은 한참 동안 뒤늦게 끝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 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자주 보지는 못해도 예전의 편안함만큼은 그대로일 줄 알았던 사람. 아무리 못해도 서로의 '근황' 정도는 묻고 지낼 거라 믿었던 사람.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상대가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던 걸,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만 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은 상대가 했는데 해석은 내 몫이었다.

관계에 책임이 있다면 붙잡는 데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건 끝낼 때 어떻게 끝내는가일지도 모른다.

"고마웠다."

"지금은 여기까지가 맞는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같은 마음이 아니다."

이런 문장 몇 개면 충분하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정당화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상대방이 스스로를 탓하지 않게 해주는 최소한의 예의.

나는 당신을 이용하거나 장난 삼아 대하지 않았다는 하나의 신호.


조용히 사라지는 건 쉬운 방식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말없이 사라지는 방식은 남은 쪽에게 보이지 않는 노동을 남긴다. 그 노동이란, 스스로에게 원인을 찾고 혼자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긴 시간. 사실상 그 모든 부담을 한 사람에게 떠넘겨 버리는 일.


나는 그게 오래도록 싫었다.

관계를 지속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비겁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문장 하나 정도의 책임은 남겨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세계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조용히 사라지는 대신 짧더라도 마침표 하나를 남기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관계는 시작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끝났다는 말까지가 관계다.

우리의 삶도 결국엔 하나의 문장이기 때문에.


마침표 하나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돌아갈 곳마저 배신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건
작은 마침표 하나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
소멸이 아니라
소멸마저 태우는 마침표 하나
비문도 미문도
결국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이 있는 것,
다음 문장은 그 뜨거운 심연부터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_황규관
관계를 오래 붙드는 사람보다
사라지는 방식에 신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마침표 하나 남길 용기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한가온 올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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