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배를 밀며>
엄마들끼리 친구여서,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친구였던 사람이 있다.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다 달랐지만 부담 없이 연락을 하고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관계.
그러니까 굳이 친해질 이유를 만들 필요가 없던 관계였다.
그녀는 그냥, 그렇게 옆에 있었다.
나는 늘 비슷한 색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어그러지는 걸 싫어했다.
그 친구는 달랐다. 즉흥적이었고, 방향을 틀 줄 알았고, 사람의 감정에 더 민감했다.
어릴 때는 그 차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색이 섞이면 결국 비슷해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친구란 결국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첫 번째로 크게 틀어진 건 고등학교 때였다. 그 친구는 종종 내 계획을 바꾸는 제안을 했다. 나는 대개 거절했고, 그럴 때마다 묘하게 서운해하는 기색을 보였던 것 같고, 그것이 둘 사이에 쌓였던 건지, 참 별것도 아닌 일에 터져버렸다.
그날은 비가 왔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였다.
그때 우산을 가지고 자기를 데리러 와달라는 친구의 연락이 왔다. 나는 심혈을 기울여 요리를 하고 있었고, 그걸 이유로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사소한 일이었는데.
그렇게 멀어졌다.
꽤 오랫동안.
다시 연락이 이어진 건 그 친구의 결혼 즈음이었다. 그래도 소꿉친구의 가장 중요한 날이니 용기 내어 축의를 보냈고, 그를 계기로 종종 안부를 주고받았다.
예전처럼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가끔 만나 웃고, 대화했다.
서로의 색이 조금 옅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그 친구도.
아마 사회생활 덕이었을 것이다.
쌓였던 일들은 무뎌졌고, 말투는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몇 해 뒤,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간 해외여행에서 다시 싸웠다.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가치관이 정면으로 갈리는 지점이 나왔다.
그날 이후 기류가 어색해졌고, 다음 날 또 사소한 일을 핑계 삼아 결국 폭발했다.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너와는 소통이 안 된다고.
내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각자의 언어가 달랐던 거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제대로 이야기했다. 그때는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다시 한번 해외여행을 함께 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다시 계획하면서는 이상하게도 망설임이 없었다. 예전처럼 잘 맞을 거라는 기대도 없었고, 달라졌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
대신 확신이 있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색이라는 것.
그리고 그걸 이제는 바꾸지 않겠다는 것.
이번에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려 하지 않겠다. 같은 감정을 공유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겠다.
필요할 때만, 서로의 배를 밀어주겠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고,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믿는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거리를 두는 걸 ‘멀어졌다’고 불렀을 것이다.
지금은 굳이 이름 붙이지 않는다. 섞이지 않아도 남는 관계가 있다는 걸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다만 이번에는 흙탕물이 되지 않을 거란 확신만 있다.
그것으로, 관계는 아직 남아 있다.
배를 밀며
배를 민다
배를 밀어 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 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보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 들어오는 배여
_장석남
관계를 붙잡기보다
서로가 닿을 수 있는 거리만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섞이지 않아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한가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