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쟁이의 고백

황인숙,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by 한가온

욕심이 많다는 건 칭찬일까, 비난일까.

전래동화에서 욕심 많은 사람은 늘 벌을 받는다. 박 속에서 오물 덩어리가 쏟아지고, 도깨비는 혹을 하나 더 얹어준다. 그러니 ‘욕심이 많다’는 건 아무래도 좋은 뜻은 아닐 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은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미술도, 음악도 잘하고 싶었고 운동회에서는 꼭 달리기 1등 도장을 받고 싶었다. 학급 임원 선거에는 단골로 출마했었다.

어른들이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다만 그 말이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능력은 없는데, 원하는 것만 많은 아이.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웬만하면 입 밖으로 내지 않게 됐다. 그냥 조용히 생각만 했다.


나는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생각도, 관심도 자꾸 밖으로 튄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변한 건 없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래서 요가도 하고, 별안간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글을 쓰며 사유를 나눈다. 전혀 다른 직종으로 옮겨 볼까 하는 생각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이제는 평가가 달라진 것 같다.

‘욕심 많은 아이’에서 ‘하여간 엉뚱한 녀석’으로.


그건 아무래도 좋다. 사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다.

하고 싶은 게 많다는 말은, 결국 아무것도 끝까지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수반한다. 더구나 ‘나이’라는 수치까지 겹치면, 나는 현실 감각 없는 사람으로 소비될 위험까지도 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굳이, 이제 와서, 꼭 그걸?

이건 질문이라기보다 검열에 가까웠다.


황인숙의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를 읽었다.

고양이로 태어난다면 툇마루에서 졸지도 않을 것이며, 사기그릇에 담긴 우유도 핥지 않을 거라 한다. 오히려 가시덤불 속을 누비며 너른 벌판으로 나간다고 한다. 이 시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자유로워서가 아니라, 어딘가 불온해 보여서였다.

평안함을 거부하고 굳이 위험한 쪽으로 몸을 던지는 고양이의 태도.

실패할 가능성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일단은 가보겠다는 고집.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언제든 다시 돌아갈 길이 마련되어 있는 선택들, 남들도 수긍할 만한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한 선택들, 그런 길만 골랐다. 하고 싶은 게 많았어도, 그중 가장 무난한 것만 집어 들었다. 내게 실패보다 더 두려운 건, 실패한 이유를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결국 ‘능력도 안 되는 게 하고 싶은 것만 많아서’ 하는 타인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이 시의 ‘고양이’에 자꾸만 나를 투영하게 된다.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는 왜 그렇게까지 편안한 자리를 붙잡고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나이를 핑계로, 현실을 핑계로, 내 세계를 좁혀 왔던 건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최근에 친구와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냐는 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는 말도 조심스레 덧붙였다. 친구는 망설임 없이 멋있다고 했다. 그 반응을 가볍게 넘기지 못했던 건, 그 친구가 서른 즈음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플로리스트로 전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나보다 먼저 ‘가시덤불’ 속으로 나아간 사람. 어쩌면 '미래의 나' 같은 존재.

그런 친구에게 또 말했다. 내 욕심에 도전이랍시고 시도한 모든 일이 뜬구름 잡는 일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난다고. 그리고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도 난감하다고.

그때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남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냥 한다는 게 멋있어 보일 뿐이지.”


맞다. 나 역시 친구가 전혀 다른 길을 간다고 선언했을 때, 그녀의 성공 여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사기그릇’을 박차고 나간 선택이 멋있다고 생각했을 뿐. 그렇다면 내 세계를 좁히고 있던 건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그 시선을 과대평가하던 나였을지도 모른다.


올해는 욕심껏 시도해 볼 일이 많아졌다. 성공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도, 심지어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조차도 알 수 없다. 다만 결과와 관계없이, 시도한 만큼은 내 세계가 넓어진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다시 돌아갈 출발 지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설령 그곳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길이라도, 한 발 씩 내딛는 연습을.


비대한 자의식이 만들어낸 조급함이 내 세계를 줄여왔다. 그것을 내려놓는 대신 그만큼 내 세계를 넓힐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이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불 속을 누벼 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 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톡 건드려
놀래 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 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_황인숙
안전한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늘 무모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가시덤불 쪽으로
몸을 기울여 보고 싶었습니다.
한가온 올림
일요일 연재
이전 07화원인만 있고, 결과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