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드라마 ‘폭싹 삭았수다’를 보았다.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삶의 방향을 잃은 부부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건넸다.
“살민 살아져.”
제주 사투리로 ‘살면 살아진다’는 의미란다. 드라마를 볼 때는 흘려들었던 말인데, 요즘은 왜 이리 마음을 후벼 파는지. 아마도 ‘살면 살아진다’는 그 말의 뜻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살기 싫어도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산다는 말인지, 아니면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낸다는 말인지.
백석의 시도 비슷했다. 그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자기의 처지를 한 발 물러서 바라본다.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 머물며, 특별한 일 없이 무기력하게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모습. 마침내 자기의 정체성마저도 흔들릴 위기에서 겨우 하루를 살아내는 그. 그 모습은 지독히 외로워 보이기도, 어쩌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가 살아있는 건, 생애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아직 숨이 붙어 있어서일까.
나는 요즘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내게 다가오는 파도를 맞닥뜨리는 일이 조금은 버겁다. 누군가의 눈에는 내 삶이 마냥 잔잔해 보일지도 모른다. 망망대해도 아닌, 위험한 파도 하나 없는 수영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나는 튜브를 낀 채 둥둥 떠다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충분히 안전하고, 불안해할 이유도 없는 그런 삶.
그런데 나는 그 수영장 안에서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내 처지가 지나치게, 또렷이 보였다. 어딜 내놓아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누군가의 기준에서 “잘 살고 있다”라고 말해 줄 만한 근거도 없는 상태.
나는 지금 살아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죽지 못해 버티고 있는 걸까.
최근 들어 나는 많은 것을 시작했다.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악기를 다시 만진다. 글을 연재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겉으로 보면 제법 ‘갓생’을 사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열심’이나 ‘성실’이라기보다는 ‘악착’에 가깝다.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을 틈을 주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
마치 백조처럼. 물 위에서는 우아해 보이지만, 물아래에서는 쉼 없이 발을 차는 그 백조 말이다.
자존감이라는 게 한 번 꺾이고 나면, 무언가를 더 해낸다고 해서 곧장 복구되지는 않더라.
운동을 해도, 공부를 해도, 글을 써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감각은 좀체 돌아오지를 않는다. 요즘의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살아내는 법을 익힌 사람에 가깝다.
백석은 시 속에서 갈매나무를 본다. 그리고 그 나무를 통해 다시 마음을 세운다.
지금 내게는 그런 갈매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잠시 앉아 쉴 그루터기는커녕, 붙잡고 일어설 만한 나뭇가지 하나 없다.
그냥 이 말 한마디만 주문처럼 되뇔 뿐이다.
“살민 살아져.”
이 말이 체념인지, 의지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오늘도 살아냈고 내일도 아마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내겠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면, ‘살아 있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살고 싶어서’ 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지금은 그 정도만 생각하며 살아낸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_백석
살아가는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저 오늘을 지나온 기록 하나즈음
남겨두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이 글은 그런 마음에서 썼습니다.
한가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