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안부>
2026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두 달째다. 연말이라서, 신년이라서 안부차 ‘잘 지내시냐’는 연락을 나눈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이제 곧 구정이니 비슷한 인사를 주고받아야 하겠다.
잘 지내냐고, 건강하냐고, 또 별일 없냐고.
얼마 전에는 몇 년 전에 애정을 가지고 가르쳤던 제자들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었다. 주된 내용은 이제 성인이 되었다며,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참 고마운 일이지만, 그보다 내게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한 마디는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죠?”였다.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언제 밥 한 번 먹어요.”와 같은, 으레 뜻 없이 하는 인사이건만.
실은 그동안 내게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 드나든 날도 있었고, 사람 사이에서 마음이 다쳐 오래 주저앉아있던 순간도 있었으며, 괜한 자존심 때문에 하루를 오래 곱씹던 날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제자에게까지 길게 풀어놓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결국 꺼내놓은 대답이 고작,
“그냥, 그럭저럭 잘 지내.”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그 말의 온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왜 그렇게 자주 ‘그냥’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 걸까. 분명 서로가 알지 못했을 각자의 사계절 속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무수히 많이 지나갔을 텐데도.
좋은 일, 축하할 일이야 대부분 이미 알고 있다. SNS 게시글로, 사진으로, 또는 누군가의 말로 어느새 다 전해졌기 때문에.
하지만 나쁜 일이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대개 당사자의 마음 한 구석에 흔적으로만 남을 뿐, 다른 아무 곳에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안부를 물으면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똑같지, 뭐.”
알고 보니 그 ‘그냥’ 속에는 아픈 실연도 있었고, 원치 않았던 퇴사도 있었고, 역한 인내를 지나온 수많은 시간도 숨어 있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으니까.
안부라는 게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지냈냐는 정확한 보고를 듣고자 함은 아니다.
어쩌면 서로의 온도를 맞추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지근한 인사에는 미지근한 대답을 건네고, 지나가는 말에는 지나가는 말 정도의 무게로 답해 주는 일.
그건 무심함이라기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방식에 더 닿아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조용히 접어두기 위해, 그리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 마음의 무게를 지워주지 않기 위해.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비슷한 말로 하루를 건넨다.
“그냥요.”
나태주의 시 ‘안부’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그러니 안부라는 건, ‘그저 잘만 있으면 되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까.
자세히 묻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운 일이라는 것.
그래서 오늘 누군가가 다시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하겠지.
“그냥요. 그래도, 잘 살아는 있어요.”
그 정도면 요즘의 안부로는 충분하니까 말이다.
안부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_나태주
안부를 묻는 말과
그 대답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숨어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까지
조용히 함께
건너가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한가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