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두면 될 일을

정호승, <수선화에게>

by 한가온

손톱 옆에 아주 작은 거스러미가 올라와 있었다. 얇고 하찮은 조각이라 그냥 두어도 일상에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한번 눈에 띈 이상 자꾸만 온 감각은 그곳에 집중된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할수록 더 신경 쓰이는 아이러니한 감각. 그러고 보니 하도 거슬려서 거스러미일까. 결국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 가느다란 조각을 붙잡아 쭈욱 잡아당겼다.


엄마는 늘 그런 건 가만히 놔두라고, 떼지 말라고 했었다. 공연히 잡아당겼다가는 피가 나니까. 나는 그걸 알면서도 기어이 꼭 손톱 안쪽의 뿌리까지 뽑아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리고 그 끝에는 예상하던 대로, 작은 핏방울이 맺혔다. 때로는 염증도 생겨 하루이틀 퉁퉁 부어 벌게진 손가락으로 다니곤 했다. 괜히 건드리지 않았으면 됐었을 일인데, 참 잘도 변수를 창조해 냈다.


내 삶의 일부도 꼭 거스러미와 같았다. 그냥 두면 자연히 지나갈 일인데 굳이 들여다보고,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결국은 손을 대 버려서 더 크게 만들어버리는 순간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옅어질 감정이 있었고, 설명하지 않아도 됐었을 침묵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나는 늘 그 경계에 손을 대고야 말았다. 분명 그 끝엔 어떤 답이 있을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이기심에 끝까지 잡아당기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끝엔 상처 비슷한 것이 남았다.


정호승의 ‘수선화에게’에는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구절이 있다. 어쩌면 견딘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괜히 건드려 더 외롭고 아프게 만들지 않는 일을 말하는 게 아닐까. 거스러미를 떼어내지 않고, 딱지도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마음처럼 말이다.


신경 쓰이는 일을 가만히 두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일 때조차,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손을 뻗지 않으면 놓쳐버릴 것 같고, 물어보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하지만 지나고 보면, 정말 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내가 너무 일찍 건드려 모양을 망쳐버린 것들만 남았을 뿐이다.


거스러미는 언젠가 저절로 떨어진다. 굳이 피를 보지 않아도, 언젠가 끝나는 일. 그 단순한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거슬린다’는 이유로 손을 대는 쪽이다. 그러면 조용했던 표면은 거칠게 헤집혀지고, 그 버릇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상처는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그 못된 버르장머리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두는 연습을 하지도 않는다.


가만히 두면 사라질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시간이 지나면 딱지도 아물고, 붓기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끝내 손이 간다. 괜히 건드려 보지 않아도 될 상처를, 이미 지나가고 있는 일을, 굳이 붙잡아 다시 또 피를 보게 만든다. 아프지 않아도 될 순간을 스스로 늘려가면서까지.


아무래도 나는 아직도 조금 덜 아문 사람인 것 같다.

상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상처를 가만히 놔두질 못해서.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_정호승
상처는 대개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들 합니다.
다만 저는, 그 시간을 자꾸만 앞당기려다
더 오래 아파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늦게 낫는 쪽을 택하려 합니다.
한가온 올림
일요일 연재
이전 10화잘 지내세요? - 그냥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