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울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구속과 간섭을 유난히 싫어했다.
친구들은 방과 후에 삼삼오오 모여 ‘시내(요즘은 번화가라고 하는)’에 놀러 나가 팬시한 문구점에서 쇼핑을 하기도 하고, 분식집에서 라면에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던데.
나의 부모는 그 ‘시내’라는 곳을 마치 불량 청소년들의 집합소로 여기고는, 혹여 내가 그 ‘불량배들’과 어울려 시내에 나갈까 봐, 방과 후 나를 집으로 곧장 모셔가는 일을 했었다.
내가 성인이 되었어도 그 일은 계속되었다. 저녁 일곱 시면 어김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언제 오니.’
귀가 전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울리던 휴대폰, 그리고 기어이 지도 교수님과의 식사 자리까지 데리러 오던 나의 부모.
나는 그걸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려 들면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사람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별것 아닐 수 있다. 방에 들어올 때 노크를 하지 않는 일, 내 물건을 별생각 없이 만지는 일. 그들에겐 그게 정말 사랑일 거다. 흉흉한 세상, 딸의 귀갓길 안전을 책임지는 것. 그리고 온갖 잡스러운 것들로부터 딸을 보호하는 것.
나는 그게 늘 불편했다. 나의 공간, 내가 만든 사회를 아무 문제의식 없이 무너뜨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인지 지금의 이 독립적인 성향도 완전히 타고난 것 같지는 않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제일 편안하게 느끼고, 누군가가 내 생활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걸 경계하는 태도.
어쩌면 오래 쌓여온 경험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꽤 늦은 나이에 독립을 했다. 그마저도 완전히 멀리 떠난 건 아니었다. 부모님이 마음 놓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 걸어서도 금방 오갈 수 있는 곳. 그건 부모를 향한 나름의 배려였다. 그리고 암묵의 요구였다.
나는 이렇게나 가까이,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으니 이제 나만의 공간을 지켜달라고.
그때는 막연하게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달라지겠지, 이제는 나를 ‘따로 사는 사람’으로 보겠지.
그런데 생각처럼 바뀌지는 않았다.
딱 사흘이어도 얼굴을 보지 않으면 언제 오느냐는 연락이 오고, 이번 주말에 들를 거냐는 말을 듣는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다. 같이 살던 딸이 집에 없으니, 보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니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엄마가 내 집에 아무 말 없이 오는 일. 오는 것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전에 한 마디라도 있었으면 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더 불편했던 건, 와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설거지가 쌓였는지 확인하고, 쉴 새 없이 집 안을 훑는다.
나에게는 이미 여러 번 겪어온 삶의 방식이 연장된 것이겠다. 그러니까, 내 공간인데도 온전히 내 공간 같지 않은 느낌을 받는 것.
그래서 약속을 했다. 집에 올 때는 반드시 먼저 연락하기로. 참 당연한 걸 약속까지 해야 했던 게 우스웠다.
그래도 그 약속은 제법 오랫동안 잘 지켜졌다.
그러다 엊그제 일이 생겼다. 수업 중, 스마트폰과 연동된 세탁기의 알림이 계속해서 화면에 뜨고 있었다.
‘세탁이 시작되었습니다.’
‘건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상하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처음에는 오류인가 싶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알림이 이상해서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혹시 지금 내 집에 누구 있어?”
범인은 엄마였다.
엄마가 내 집에 와 있었다. 방충망을 고치려고 왔다가, 집이 너무 어질러져 있어서 치우고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마웠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 올라왔다.
솔직히 엉망이었던 건 맞다. 먹은 음식을 제때 치우지 못해 말라 붙은 음식물들도 있었고, 쓰레기를 버리지 못해 꽉 찬 봉투가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었고, 빨래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으며, 머리카락도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 공간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도, 누군가가 치워줘야 할 것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말하기로 했던 약속. 그게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곤 왜 그랬느냐고 화를 냈다. 학생들이 흘끗 쳐다보든 말든.
내가 싫다고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느냐고.
엄마는 연락하기 애매한 시간이라 생각했고, 집 상태를 보니 그냥 둘 수가 없었다고 했다. 피곤할 딸 대신 치워주고 싶었다고.
그 말을 듣고도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엄마를 다그친 나는, 이후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결국 두어 시간 뒤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자신은 딸을 위해 한 일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면박을 줄 수 있느냐며. 해주고도 그런 말까지 들어야 하느냐며. 세상 어떤 부모가 그 광경을 보면서 치워주지도 않고 그냥 나오겠냐며.
묵묵히 들었다, 그냥.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이 금방 가라앉지는 않았다.
나는 분명 그런 게 싫다고 어릴 적부터 수백 번, 수천 번 말해왔는데, 그 말을 왜 계속 가볍게 넘어가는 걸까.
딸이 싫다는 걸 해주는 게 사랑이 맞는 걸까. 오히려 그 사랑하는 딸을 더 괴롭게 한다는데, 왜 괴로움을 감춰가면서까지 나는 고마움을 강요받아야 하는 걸까.
옆 자리 선생님들은 말했다.
“나도 우리 엄마가 내 집 좀 그렇게 치워줬음 좋겠다!”
그들은 모르겠지. 독립된 개체로 인정받지 못하며 살아온 어린이는,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보호의 대상으로 남는다는 걸.
그런데 일순간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절대 호락호락한 딸내미는 아니었다. 엄마를 매번 힘들게 했고, 그걸 묵묵히 받아내 준 사람 역시 엄마였다.
엄마는 이제 환갑이 넘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아기가 되어간다 한다. 어쩌면 엄마는 그 시절의 나로, 나는 그 시절의 엄마로 역할이 바뀌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 이제는 내가 엄마를 받아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엄마는 여전히 나를 돌봐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었으나, 나는 그런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 더 정확히는 엄마의 마음을 돌보기로.
엄마를 울린 그날, 야근으로 인해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부모님 댁으로 찾아갔다. 아기 주먹만 한 딸기도 한 팩 챙겨서. 그리고 주말에 맛있는 걸 사주겠노라 하면서 부모님 댁을 나왔다.
아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겠지. 엄마의 사과가 없어도 괜찮다.
다 큰 딸은, 이제 다 큰 딸의 마음을 돌보기로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