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식당에서 비슷한 일이 두어 번 있었다.
때가 되면 제철 음식을 먹어야 그 계절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아버지의 성화에, 도다리쑥국을 먹기 위해 인터넷 서칭으로 찾은 한 식당으로 갔다. 각각 먹고 싶은 메뉴가 달라 이런저런 합의를 거친 후 주문을 하려는데, 주문을 받던 사장님은 자꾸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도다리쑥국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기에, 그러면 그걸 2인분으로 추가하고 또 다른 메뉴들은 그대로 달라 하였다. 그러니까 사장님은 반말로, 그러면 돈이 아까우니 메뉴를 하나로 통일해서 주문하라고 하였다.
듣고 있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우리가 먹고 싶은 걸 고르고 있는데, 왜 바꾸려고 하지 싶었다. 추천이라기보다는 제한에 가까웠달까.
그래서 말이 먼저 나갔다.
사장님과의 실랑이가 3분 가량 이어지며 같은 말이 반복되니까 말이다.
“돈은 우리가 내는데, 사장님이 와예.”
말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말했어야 했나 싶다가도, 그렇다고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고.
애매했다.
또 한 번은 저녁 시간에 들른 식당에서였다.
테이블 호출 벨소리가 울려도 들은척 만척, 지나가는 종업원을 불러도 휙 돌아보고 그대로 직진.
우리 테이블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딩동-'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 결국 화를 낸 테이블도 있었다.
바빠서 그렇겠지, 싶어 일단은 잠자코 기다리며 마저 식사를 했다.
그리고 계산할 때였다. 오늘 많이 바쁘셨는가배요- 하는 말에 돌아온 사장님의 그 한 마디가, 또 말이 먼저 나가게 만들었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리니까예. 그거는 손님이 이해해 줘야지.”
“사장님요, 사람 밥 묵는 시간 다 똑같다아입니꺼. 바쁜 게 손님 탓입니꺼.”
정말이지, 공포의 주둥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꼭 다시 돌이켜 보게 된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걸까.
조금만 참고 있었으면 그냥 지나갔을 일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했으면 그것대로 또 찜찜했을 것 같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직면하게 되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먼저 되는 게 아니라 말부터 나간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한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미 상황이 다 끝난 이후에 말이다.
최근에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같은 캐릭터는 제 인생에서 처음 만나봐요.”
당시에는 ‘너거들이 더 특이해.’ 하며 웃고 넘기긴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어디까지가 괜찮은 건지, 또 어디서부터 과한 건지 그 경계를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 않을까.
참았어야 했나 싶다가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또 아닌 것 같고.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말은 이미 나갔고, 상황은 종료 됐고, 남은 거라곤 애매한 느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