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큰집의 놀이터는 큰집을 기준으로 딱 세 집만 지나면 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면적은 글쎄, 어른들의 단위로 10평이나 되었을까.
어릴 땐 제 몸집 작은 건 생각지 못하고 세상이 크고 넓다고 생각하였으니, 그 놀이터 역시 작고 좁은 줄 몰랐다.
명절이나 가족행사로 일가친척이 모일 때면, 어린이들은 모두 거기 모여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외가 큰집이 있던 지방에 갈 일이 생겼다. 시간이 남았기도 했고, 어릴 적 정 붙인 기억이 있는 곳이니 부러 먼 길로 돌아 옛날 큰집 쪽으로 갔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정미소’와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던 그 놀이터를 가보고도 싶었고.
이상하다.
분명 그때 그 초록색의 벗겨진 페인트, 철제 울타리는 그대로인데, 그 안은 내 기억 속 그곳이 아니었다.
거꾸로 올라가다 엄마에게 혼났던 그 미끄럼틀도, 어지럽다고 동생 울리던 그 뺑뺑이도, 모래로 만든 떡을 찧어주던 그 시소도, 앉아서 타라고 만든 걸 꼬옥 서서 타다 바닥에 떨어졌던 그 그네도 없다.
없어진 건지, 아니면 어른 키까지 자란 이름 모를 무성한 잡초에 가려진 건지 알 수는 없다.
그 자리는 그냥, 사람이 들어가도 되는 곳이 맞는지 잠깐 망설이게 되는 풀밭이 되어 있었다.
허망한 기분.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그러니까 자주 가던 맛집이 어느 날 갑자기 폐업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뭐랄까, 90년대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시절만의 낭만 같은 게 있었다.
동네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얼음땡’을 아무렇지 않게 함께 하고. 대체로 함께 놀러 나온 동생들은, 깍두기로 같이.
다음날 또 나가보면 그 애들이 그대로 또 와 있고. 그렇게 몇 번을 더 마주치다 보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다가 그 ‘친구’들은 서로 집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 초대를 하고 싶어 그 친구 집에 전화라도 해야 하는 날엔,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이얼을 눌렀다.
선이 돌돌 말린 유선 전화기를 붙잡고,
“안녕하세요? 저는 아무개 친구인데요, 혹시 지금 아무개 집에 있으면 바꿔주실 수 있나요?”
그 말만 수십 번 연습하다가 겨우 전화를 걸었더랬다.
제발 그 집 아줌마 말고, 그 친구가 직접 전화를 받길 수백 번 빌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일도, 그때는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우리 어린이들은 그렇게 자기들만의 사회를 만들어갔다.
내게도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친해진(‘얼음땡’이었던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였던가.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 놀이를 언젠가부터 함께했던), 언니가 하나 있었다.
한 살 많은 언니였고, 그 언니의 동생까지 우리 셋은 놀이터에서 자주 같이 놀았다.
어느 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아파트 동과 동 사이, 잡초가 듬성듬성 나 있던 곳에 플라스틱 장난감 활 하나를 묻었다.
아마 그 장난감 활은 그들 자매의 집에서 챙겨 온 걸 거다. 언니의 손에는 화살도 없이, 그냥 활만 덜렁 들려있었다. 형광의 연두색이었던가, 주황색이었던가, 그랬다.
얌전히 집에서나 가지고 놀 장난감을 굳이 왜 땅 속에 묻었는지, 어린이들의 사고 회로를 이해할 수는 없으나 아무튼 우리는 그 활을 묻은 자리에 손을 올리고는 비장한 맹세를 했다.
‘일 년 뒤에 여길 같이 파 보는 거야.’
지금은 그 언니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키가 컸고, 깡말랐고, 옆으로 긴 타원형의 안경을 썼던. 이름은 외자였는데 조금 특이했다. 그래서 그 이름은 비교적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 언니의 동생은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 언니도, 그 동생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다.
그래도 괜히 이런 기대는 해본다.
그날 우리가 활을 묻으면서 일 년 뒤에 파 보자고 했던 그 엉뚱한 약속만큼은, 어디선가 같이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몇 년 뒤 나는 혼자 그 활이 묻혔던 곳으로 추정되는 그 자리에서 땅을 파보았지만, 활은 발견하지 못했다.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 30년 정도 지났으니, 없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활이 발견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날 우리가 묻은 건, 하찮은 플라스틱 장난감 활 안에 담겨있었을 그때 그 시절의, 그러니까 90년대 어린이들의 낭만이었을 거니까 말이다.
그러니 외가 큰집의 놀이터 또한 그때의 낭만으로, 기억 속에 묻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