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선생님! 왜 이 시간까지 계시는 거예요?”
“그러는 선생님은요.”
3월 첫 주, 교사들의 안부 인사다.
매일 밤 11시에 퇴근을 했다.
새 학기 첫 주는 담임교사에게 있어 정시 퇴근은 남의 일이다. 일 년을 또 열심히 키워 낼 아이들을 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교실에서 한 명 보내고 또 한 명 들이고, 그다음 또 한 명. 상담이 끝나면 해는 이미 저문 지 오래, 휘영청 밝은 달만 퇴근길 동무가 되어준다.
겨우 일주일이지만, 솔직히 힘에 부친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예전에 맡았던 아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교단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내가 맡게 된 학생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땐 나도 참 어린 나이였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긴장해 있었고, 그때의 나는 아이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학생들이 교사를 쉽게 보면 안 된다고, 괜히 어른들의 말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교사의 권위, 학급 운영 방법, 상담 기법 같은 것들. 나름대로 전문적인 교사처럼 보이고 싶었다. 말투는 단정하게, 태도는 차갑게. 옷차림도 열 살은 더 들어 보이게 입으려고 했다. 아이들과 같은 브랜드를 사 입으면, ‘어린 선생님’의 티가 날까 봐서 돈 10만 원 즈음 더 들여 비싼 브랜드의 옷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차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학생을 학생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의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었달까.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발악이었다고 치자.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마지막 날이 되었다.
종례가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가 짐 정리를 하려는데, 남학생 셋이 찾아왔다. 평소에도 대입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던 애들이었다. 담임인 나를 마주쳐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만 까딱, 학구적이긴 한데 인간적인 정이 딱히 가지 않는 타입이었다. 또래 아이들처럼 떠들거나 시시한 농담을 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른들이 좋아할 싹싹한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런 애들이 내 앞에 서 있다가 머뭇거리기에,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다 맨 앞에 있던 한 아이가 수줍게 말했다.
“선생님, 1년 동안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찾아온 여학생 한 명은 펑펑 울다가 돌아갔다.
너무나 미안했다. 물러터진 게, 쓸데없이 단단한 척만 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애들은 나보다 훨씬 솔직했는데, 나는 괜히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애쓰느라 그 마음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솔직함을 받아줄 마음을 처음부터 없애버리고 벽부터 쳤다.
이번에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맡았다. 상담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능력 이상을 해내느라 버겁기도 하다. 그때마다,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온 그 아이들을 떠올린다. 서투른 나를 그냥 그렇게 받아준 그때의 아이들을.
속된 말로 ‘짬 좀 찼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도, 완벽한 담임은 아니다. 그래도 서투름을 숨기려고 어른인 척 연기하는 담임, 그래서 아이들의 진심을 보지 못하는 '가짜 어른'은 되지 않으려 한다.
그때의 나를 키워 준, 나의 첫 제자들에게 언젠간 대답해주고 싶다.
내게 가르침을 주어서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