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선결제

by 한가온

스트레스의 대가도 미리 지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반응하고, 오지도 않은 위기에 먼저 몸이 굳어버린다. 현실은 멀쩡한데 몸만 정신없이 바쁘다. 나를 괴롭히는 일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이미 지쳐있다는 사실을 방학 중 연수에서 들켜버렸다.


대학교에서 심리학 강의를 하고 계신다는 박사님께 회복 탄력성과 감정 조절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연수, 강연, 강의. 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만, 실은 가만히 앉아서 듣는 일은 고역에 가깝다. 관심이 없어도 있는 척은 잘한다. 적당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고, 수첩에 맥락 없이 메모를 늘어놓는 일쯤은 능숙하다. 나중에 펼쳐보니 전두엽이 어쩌고, 감정은 자동이 아니라 조절이라는 둥, 이해 못 할 단어들이 빨래 마냥 널려있었다.


그래도 하나는 인상 깊었다. 실습 시간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나는 얼결에 실험용 인간이 되어버렸다. 자율신경검사를 한다고 하였다. 내 귓불에 집게 같은 것(센서라고 했다)을 달았다. 심박과 현재 심리 상태가 수치로 나타난다고 했다.

세상에나,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만천하에 공개된다니. 공복에 커피를 마신 터라 혹시나 부정맥이 있는 사람으로 오인받지 않을까 하여 괜히 쓸데없는 변명까지 덧붙였다. 원래 맥박이 빠르다고.

화면에 뜬 내 상태는 중간 60, 평온 40.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정도의 평화였다. 그때 교수님이 내게 말했다.

“이제부터 선생님께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하나 가정해 볼게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정 반응의 수치가 움직였다. 빨간 막대기가 0에서 20까지 오른 것이다. 나는 아직 아무런 스트레스 상황에 부딪히지도 않았다. 그저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들었을 뿐이다.

원래 사람이 그렇단다. 실제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에 맞닥뜨리기도 전에, 이미 몸은 그것과 싸울 준비 태세를 갖춘다고.

그 자리에서 알았다. 그러니까 사람은 스트레스를 ‘겪는’ 존재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상상’하는 존재라는 걸.


“새 학기 힘들겠네.”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기운이 빠져 버린다. 작가의 꿈을 여적 버리지 못한 나는, 누군가 “출간이 쉬운 일인 줄 아냐.”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 투고도 하지 못했는데 마음이 먼저 철수한다.

일이 나를 괴롭히기 전에, 나는 가능성으로 먼저 나를 괴롭힌다.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이미 진 사람처럼 군다.

선결제는 그렇게도 참 성실하단 말이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계산법을 써보아야겠다. 어차피 몸이 단어에 반응한다면, 단어를 아예 바꿔버리는 수밖에.

'힘들겠다' 대신 '해볼 만하다', '망할 것 같다' 대신 '아직 모른다', 이런 식으로.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또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가장 든든한 근거가 아닌가.

결제창이 아직 뜨지도 않았는데, 굳이 카드부터 긁을 필요는 없다.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값을 지불해도 된다. 아직은 미결제 상태로 두는 편이 덜 피곤하다.


여전히 나는 상상을 잘하는 사람이다. 다만 이제는 선결제 대신 보류, 내 안의 빨간 막대기를 최대한 눌러 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려 한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