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큰 사거리에 새로 생긴 빵집 옆을 지나가다가, 언젠가 둘째 외삼촌이 내게 툭 던진 한 마디가 생각이 났다.
“니는 마, 삼촌이 소금빵 좋아하는 거 알면서 우째 한 번을 안 사다주노?”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그 속엔 조카를 향한 애정 어린 친근감의 표시인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침 그날은 부모님께서 둘째 삼촌 내외를 만나러 가신다는 날이었기에, 부러 빵집에 들러 소금빵을 넉넉히 샀다.
계산을 하려는데, 앳되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빵 봉투를 접다 말고 큼직한 빵 하나를 슬쩍 더 넣어주었다.
“마늘빵인데, 금방 나온 거예요. 하나 드셔보세요.”
아무렇지 않게 덧붙인 말이었을 것이다. 사실 빵을 많이도 샀으니 하나쯤 얹어주는 게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말 한마디에 기분이 괜히 밝아졌다. 계산서에는 찍히지 않은 어떤 마음을 받은 느낌으로.
그때 어릴 적 동네 작은 빵집이 떠올랐다. 당시 1200원짜리 우유식빵 한 봉지만 사도 조그만 쿠키나 작은 빵 하나를 ‘서비스’라며 얹어주던 곳. 그때는 그게 참 대수롭지 않은 풍경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인심 참 후한 시절이었다.
요즘은 ‘1+1’이라는 문구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다. 엄밀히, 수학적으로 따지자면 1+1이 훨씬 명확하고, 경제적이다. 놓치면 손해 보는 기분까지도 정확하게 계산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1+1을 챙겼을 때의 만족감과 덤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그 결이 다르다. 1+1은 서로 간 약속된 혜택이고, 덤은 예상 밖의 호의라서일까. 하나 더 받았다는 사실은 같아도, 하나 더 얹어준 마음은 전혀 다른 온도를 지니기 때문일까.
아마도 우리는 계산된 이득보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더 쉽게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인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크게 받아들이고, 의무가 아니었기에 더 고마운 마음.
그래서일까. 며칠 전 붕어빵을 사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붕어빵 세 개에 2000원을 받는다는 그곳에서 4000원어치를 달라 말씀드렸다. 그러니 붕어빵은 총 여섯 개가 되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봉투에 여섯 개를 꽉 채우고도 하나를 더 넣어주셨다. 오늘은 바삭하게 잘 구워졌으니 하나 더 드셔보시라면서.
고작 붕어빵 하나인데, 온 맘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나 하고 말았을 텐데, 그날은 괜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까지 얹고 돌아섰다. 실은 내가 덤으로 받았던 건, 붕어빵 한 개 이상의 온정이었을 테니.
참 그렇다. 1+1에는 민감하면서도, 덤에는 좀처럼 익숙하지 않다. 손해는 정확히 계산하면서, 예기치 않은 호의에는 아직도 서툴게 웃어버리고 만다. 계산서에 적히지 않은 그 마음, 계약으로 묶이지 않은 호의, 굳이 얹지 않아도 될 것을 얹어주는 따뜻함. 아마 그 작은 여분의 온기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빵 봉투 안에는,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마음이 꽉 차게 들어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