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친절에 대하여

by 한가온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손을 씻으려다 왼쪽 셋째 손가락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발견했다. 언제 베였는지, 무엇 때문에 생긴 상처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의아했지만 ‘어디선가 다쳤겠지’ 대수롭지 않게 손을 씻었다.

그러다 문득 몇 시간 전, 기차역 부근 공영주차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내 자리 하나쯤은 있겠지’ 하면서 주차장을 빙빙 돌다가 수상한 남성을 목격했다. 어느 자동차 위에 올라가 앉아 무언가에 열심이던 그.

도둑질을 하려는 건지. 뻥 뚫린 넓은 주차장에서 행하기에는 다소 대범하긴 하다만, 그건 누가 보더라도 충분히 오해할 만한 장면이었다. 마침 ‘수상한 그 자’를 기준으로 두 칸 정도 옆에 자리가 생겨서 일단은 주차부터 했다.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올리고, 차 문을 닫으면서 그 자의 행동을 아닌 척 유심히 지켜보았다(여담이지만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면서부터 생긴 습관이다).

여전히 차 위에 올라가 있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으시냐고.


다가가서 살펴보니 옆 차가 너무 바짝 붙여 주차를 해놓는 바람에, 문을 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키는 고장이 나서 조수석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결국 차 위에 올라가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던 거라고.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마른 체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발을 디딜 수가 없다는 걸 몸소 깨달아 내린 최후의 선택이라는 걸 알고 나니, 이상한 사명감이 생겼다.

오지랖을 한 번 더 부렸다. 내가 한번 해보겠다고.


두꺼운 점퍼를 벗어 그에게 맡기고 스마트키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 좁은 틈에 한발 한발 들여놓으면서 몸을 욱여넣었다. 옷이 더러워지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일단 문을 여는 데까지는 성공. 그는 그때부터 나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한쪽 다리를 어떻게든 넣어보려 애썼지만, 열린 문 틈의 간격이 너무 좁아 깡마른 나조차 쉽지 않았다.


팔을 집어넣어 뒷문도 열어보고, 애써 만진 머리가 헝클어져도 일단 욱여넣어 보고. 혹시 긴 막대 같은 게 있으면 조수석까지 닿지 않을까 하여 그에게 찾아보라고 실없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는 또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종국에는 운전석 쪽을 들어서 옮겨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뻗쳐 실행에 옮겼지만 이마저 실패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우스운 상황이다. 마치 ‘덤 앤 더머’, ‘패트와 매트’처럼 말이다.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을 부르셔야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내게 ‘마음 써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도움도 못 되어주었는데, 괜히 나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손가락에 난 상처는 자동차를 들어 올릴 때 생긴 것이었다. 피는 이미 말라붙어서 따갑지도 않았다. 핏자국이 씻겨 내려간 곳을 살펴보니 ‘상처’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상대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친절. 오히려 상대를 더 곤란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쓸모없는 개입. 어쩌면 내 오지랖이 때로는 무례가 되기도 하니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할까.

다시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다.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대도 아마 또 말을 걸었을 것이다.

무슨 일 있으시냐고.

도움이 되지 못할 걸 알면서도, 괜히 또 점퍼를 벗어 그에게 건넸을 거다.


누군가는 친절한 마음조차 조심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도움은 값을 치러야 하고, 마음마저 효율을 따지게 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민망함 때문에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 같다.


여전히 ‘확신 없는 친절함’ 쪽으로 몸이 먼저 기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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