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배 아파요.”
벌써 몇 번째일까. 입학식 이후로 매일 같이 교무실을 찾아오던 아이가 있었다. 하루는 배가 아팠다가, 그다음 날은 머리가 아팠다가, 또 어느 날은 토할 것 같다며 울먹였다.
처음엔 학생이 몸이 안 좋다고 하니, 교사인 내 선에서 해줄 수 있는 조치는 다 해보았다. 보건실도 데려가고, 진통제도 먹여보고. 어지러워서 급식실까지 갈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하기에 식판에 음식을 받아다 아이 앞에 조심히 내려놓은 적도 있다.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마른 체격이라 혹시 기저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창백해 보이는 얼굴이 빈혈 때문은 아닐지, 여리한 체형 또한 사실은 영양 불균형 때문은 아닐지 기초 자료도 찾아보고 상담도 해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학기 중반이 지나도록 아이는 매일 아프다는 이유로 울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더 많이 교무실에 찾아와 아프다고 호소했다.
하루는 보건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건넸다. 단순한 궁금증 때문에.
“근데 너, 맨날 아프다면서 왜 병원을 안 가?”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자주 아픈 거라면 그거야말로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아봐야 할 일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아이의 난감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아이는 정말 아픈 걸까, 아님 아프고 싶은 걸까.’
고등학교에 다녔을 시절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던 것도 그 순간이었다. 나는 시험 기간만 되면 ‘괜히’ 컨디션이 나빠졌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머리가 아파 책상에 엎드려 있기도 했고, 급식을 먹고 체했다는 이유로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기도 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병원에 갈 만큼 아픈 건 아니었다는 걸. 그저 내가 “아파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주는 눈빛과 말투로 바라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라는 걸.
나는 정말 아픈 걸까, 아니면 아프고 싶었던 걸까.
답을 내려보자면, 나는 단지 ‘아프고 싶었던 것’에 불과했다. 그 아이도 비슷할 거라 거라 생각했다. 물론 눈물까지 흘리며 찾아왔던 통증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나 지금 힘들어요.”라는 마음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는 교우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남자친구와 다툰 날이면 더 자주 아프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진통제도 아니었고 병원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힘듦’을 가만히 들어줄 누군가였을 것이다.
“그래, 많이 힘들었지.”
“그래서 눈물이 났었구나.”
그날 이후로는 아이가 교무실에 젖은 눈으로 찾아올 때마다 다른 질문을 건네 보려고 했다.
“어디가 아파?” 대신 “오늘 무슨 일 있었어?”하고.
아이의 대답이 길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잠깐 옆에 앉아 있다 가는 것만으로도, 아프다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곳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에게는 필요했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랬다. 정말로 약이 필요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누군가가 “괜찮아? 힘들지?” 한 번만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다.
아픈 척을 했던 게 아니라, 아프다는 말로 겨우 살아있음을 알리던 시절.
그래서 이제는 학생이 “저 아파요.”라고 말하면 그 말의 다른 의미를 먼저 떠올린다. 지금 많이 힘들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를 조금만 들여다봐 줬으면 좋겠다는 신호로일지도 모르겠다고.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아프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