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다니던 요가원을 잠시 쉬기로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발목 부상이었다. 예전에 다친 곳이 다시 불편해진 것 같다고.
그렇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보통 요가원이라 하면 조용하고, 고요하게 수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내가 그 요가원에서 만난 그 강사님은 정반대였다. 성악을 전공했다는 말이 납득될 만큼, 그 큰 울림통으로 카운트를 외쳤다.
“다섯! 넷! 셋! 두울- 숨 쉬세요! 하나아!”
그러면 나는 허벅지가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강도 높은 자세를 연달아 취하느라 숨이 찼지만, 이상하게 수업이 끝나면 활력이 생겼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영양가 없는 사담을 나누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수강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갑자기 제안했다.
“12월 31일 수업 끝나면, 우리 여기서 맥주 한 캔 할까요?”
다들 웃으며 좋다고 했다. 괜히 들떴다. 대단히 특별한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 달 정도 지났다. 그녀는 오늘부로 요가원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짧은 공지를 전했다. 당황스러움이 먼저였고, 그리고 다음엔 맥주 한 캔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사한 표정으로 약속까지 해놓고, 그 별것도 아닌 걸 기억하는 내가 조금 머쓱했다. 우습지만 서운한 감정도 따라왔다. 약속을 했으니 자연스레 다음, 그다음 만남도 있을 거라 여겼던 탓이다.
그녀의 후임으로 온 강사님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누군가는 더 섬세해서 좋다고 평했다. 조곤하고 우아한 말투의 후임 강사님이야말로 ‘요가 강사의 전형’처럼 보였으나, 나는 그녀만의 독특한 생기와 에너지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요가원을 의무처럼 다니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기로 했던 거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비슷한 일이 몇 가지 더 있었다.
동네에, 만만해서 자주 찾던 케이크 가게가 있었다. 여기서 ‘만만하다’는 건, 그저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언제, 어떻게 찾아가도 늘 본전 이상의 맛과 분위기를 제공한다는 지극히 긍정의 의미다. 그곳은 항상 서비스로 레밍턴 케이크를 내어주었다. 네모 반듯하지도 않은, 그 소박하고 작은 레밍턴 케이크 조각을 나는 특히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케이크 가게 앞에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이제 이 자리에 2층 짜리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선다고.
그 케이크 가게가 동네를 대표하는 맛집인 것도 아닌데, 괜히 못마땅했다. 그 자리에 새로 생긴다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지 않겠다고. 내게 그 작은 레밍턴 케이크는 생각보다 큰 조각으로 남아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곳에서 보낸 시간, 분위기 모두 빼앗겨버린 것 같아서.
일방적이라면 일방적인, 혼자만의 연결고리가 조용히 끊어졌다. 친밀하다고 말하기에도, 무어라고 이름 붙이기도 애매한 관계가 끊어져 이제는 우연이 아니면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공허하게 한다.
상실이란 것은, 이렇듯 생각보다 사소하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