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by 한가온

눈을 떠보니 엠뷸런스 안이었다.


어떻게 실려 왔는지는 마치 낮에 꾼 꿈처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평일 저녁, 야근을 하고 있던 나는 가슴이 답답해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었다. 그러다가 시야가 흐려지면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리고는 그대로 쓰러졌나 보다.


그렇게 쓰러진 나를 누군가가 발견하고, 그 뒤로는 응급대원이 와서 처치를 하고 엠뷸런스에 태웠다고 했다. 의사는 실신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검사와 CT, 이런저런 검사까지 하면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릴 거라고 했다.


두세 시간.


그 시간이면 남아 있는 다른 일을 한두 개 즈음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나 때문에 일정이 꼬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는 정신도 다 돌아온 것 같았고, 그래서 검사를 거부한 채 그대로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의사와 간호사는 몇 번이고 나를 설득했지만.


사실 몇 달 전부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정신과를 처음 찾았던 이유는, 스스로 너무 예민하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어서 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의사는 내게 약을 처방해 주며 너무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강박이 있는 편이니 불안을 낮춰주는 약을 먹어보자고 했다. 그 약은 용량을 조금 늘려 지금까지 계속 먹고 있다.


의학적으로 얼마나 나아진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묘하게 의미 없는 불안이 내려간 느낌은 있다. 긴장되고 걱정되는 일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일도 더 잘 되는 것 같았고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기분에 조금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고, 유능한 직장인으로 보이고 싶었다. 몸이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도 모른 척했다. 어지럽고, 피곤하고, 구역감이 올라오고, 식욕도 없고, 숨이 가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일잘러는 보통 이런 증상을 달고 사는 거지’ 하며 이상한 방향으로의 긍정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주입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 돌아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은 내게 내일은 출근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응급실까지 동행한 교감선생님은,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내일은 좀 쉬라고 부탁처럼 말을 전해왔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일정이 밀리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그러니 그냥 나오겠다고.

솔직히 말하면, 쉬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무능해 보일까 봐.


결국 그 고집에 교감선생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려는데 전화과 왔다. 예상 밖의 수신자, 교장선생님이었다.

메시지는 똑같았다. 오늘은 출근하지 말 것, 병원에 들러서 영양제라도 맞고 집에서 잘 먹고 쉬라는 것.


창피했다. 교장선생님까지 전화를 해서 쉬라고 하니, 더는 방법이 없었다. 하릴없이 알겠다고 대답하고, 결국 병가를 냈다.


그날 나는 정말 집에서 시체처럼 누워있기만 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피해 아닌 피해를 끼쳤는가,를 반성했다.

쓰러진 나를 보고 놀랐을 사람들, 걱정했을 사람들, 병가로 인해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가 밀리게 된 사람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왜, 사고 거하게 친 연예인들이 공식석상에 나와 하는 교과서 같은 멘트가 있지 않은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예전에는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심려를 끼쳤다는 건지, 누구를 향한 사과인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날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 것 같았다.


나는 몸이 아파 쓰러지긴 했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일도 밀렸을 것이고, 괜히 신경 쓰게 했을 것이다. 그 상황이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아, 이럴 때 저 말을 하는 거구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쉬고 난 다음 날 출근을 했다. 부장님과 교장선생님께서 따로 불러서 면담을 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일 잘하는 것도 좋지만, 몸까지 망가져 가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길게 보고, 조금씩은 쉬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몸이 괜찮아야 일도 할 수 있고, 마음이 괜찮아야 사람도 만날 수 있다. 둘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나머지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머리로는 충분히 알겠다. 이제는 마음이 받아들일 차례.

정말로, 조금은 내려놓아도 괜찮은 걸까.

완벽하려는 버릇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안다.

대신 몸이 강제로 전원을 꺼버리게 전에, 스스로 일시중단을 하는 요령을 배워가야 ‘심려를 끼치는’ 일도 생기지 않을 거란 걸 이제야 알게 된, 민망한 직장인의 고백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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