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퍼붓던 날이었다.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는 나무의 토사물처럼 보일 정도였고, 과장 조금 보태 온 세상을 손으로 잡고 비틀어 짜내면 커다란 양동이 오백 개를 채우고도 모자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파트 입구에 서서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 건, 유난히 고되었던 그날의 나에게 제공하는 하나의 보상 같은 거였다.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지우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던 그때, 내 눈에 자전거 한 대가 들어왔다. 옆에 세워둔 다른 자전거와는 달랐다. 자물쇠도 아닌, 붉은색의 노끈으로 칭칭 감아둔 자전거.
얼마나 소중하길래 저래 칭칭 매어 뒀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자주 타는 자전거가 아닐 테니 저렇게 노끈으로 칭칭 묶어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야 말이 되겠지. 매일 타는 자전거를 굳이 저렇게 힘든 방식으로 매어 두고 보관하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니까 이 자전거는 꽤 오래, 이 자리에서 방치되었을 거란 말이다.
내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자전거야말로 그 시절 나에게 최고의 도파민을 선사해 주던 도구였다.
세발자전거 뒷자리에 남동생을 태우고는 복도식 아파트를 신나게 누볐다. ‘얘가 내 동생이에요.’라는 같지도 않은 자랑과 함께.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네발 자전거를 타고 더 넓은 세상을 누볐다. 뒷바퀴에 조그마하게 달린 보조바퀴, 세상 현란한 사운드를 내던 자전거 벨,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바퀴에서 도록거리던 두어 개의 플라스틱 구슬(자전거에 이게 꼬옥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시절 나의 요구사항이었다)까지도 전부 기억이 난다.
몇 년 뒤에는 보조바퀴 마저 떼 버렸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을까. 보조바퀴를 달고 타는 건 고학년의 자존심에 제법 큰 스크래치가 생기는 일인지라, 중심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면서 ‘멋’으로 두 발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그러니 상당히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한 탈것은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였겠다. 모든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성장한 그 탈것.
그러니까 내게 있어 자전거는 꽤 소중한 대상이다. 그럼에도 나는 노끈 따위로 칭칭 감아둔 적은 없었다. 하물며 자물쇠로도.
어찌 보면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소중하다고 해서 묶어만 두면, 그건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자주 풀어둔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닐 거다.
오히려 매어두지 않으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테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게 무엇이냐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어찌 보면 아침에는 세 발, 점심에는 네 발, 저녁에는 두 발로 달리는 자전거와, 사람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어 두지도 않고, 방치하지도 않고, 그저 자유로이 풀어두면 다음 단계로 성장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