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마법의 주문, 그러라 그래

정현종, <방문객>

by 한가온

종종 타인의 무심함에 흔들릴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온 작은 한숨 조각이 큰 폭풍으로 다가와, 단단하게 쌓아 올린 줄 알았던 내면의 요새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곤 한다.

정현종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 말처럼, 타인의 말 한마디가 마음속에 자리를 틀 때가 있다. 문제는 그 자리가 때로는 ‘방문객’이 아니라 ‘불청객’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태어나서 가장 큰 배신감을 느꼈던 날이 있다. 나만 모르고 있던 사실이, 저들끼리의 ‘비밀’로 공유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던 날이다. 당시에는 “사람 하나 바보 만드니 얼마나 재미있었니?”라는 냉담한 말로 내가 받은 상처의 크기를 그들이 가늠해 주길 바랐다. 더 솔직하게는, 저들은 내게 상처를 입힌 죄가 있으니 마땅히 내뱉어도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서운함을 동반한 나의 분노를 맞닥뜨린 그들은 모두 ‘그러려던 게 아니다’라는 말로 설득하며 미안함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한번 비뚤어진 마음은 그들의 사과를 받아줄 공간을 조금도 내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나를 해하려 한 것처럼, 일부러 과오를 범한 사람들인 양 마음속에 선을 그어두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봤을 때, 어쩌면 나는 스스로 ‘피해자’의 입장에 올라서서 내게 거북함을 준 이에게 ‘죄책감’이라는 형벌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방패로, 아니 무기로 삼아 그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준 것은 아니었을지.


“저 사람 왜 저래?”라는 말은, 그의 언행이 어떠한 경로로 도출되었는가를 이해해보고자 함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니므로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다. 단지 그는 그의 시각과 관점을 중심으로 상황을 판단했던 것뿐. 어쩌면 그들의 말과 행동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 세계의 크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게 배신감을 안겨주었던 이들은 사실 배려의 폭이 나의 그것과는 달랐던 탓이다.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무례함을 행한 것이 아니라, 그 무례함조차 감각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겠다.


“그러라 그래.”

가수 양희은 씨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말을 하더라. 서로에게 기대하는 배려의 범위가 달랐다면, 그래서 내 마음이 다칠 것 같다면 굳이 붙잡아 의미를 묻지 않기로 했다. 다만 ‘너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나 보다’ 하고 흘러가게 두기로 했다.

‘내가 싫어서? 아니면 저번에 그런 행동을 했어서?’ 골몰히 헤아려봐도 그 이유가 정답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애당초 상대에겐 아무런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러라 그래’ 하면 없던 생채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도 생기지 않을 테고, 드나드는 방문객도 덜 아프게 지나갈 테니까.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_정현종
사람은 서로의 삶에 스치듯 들고 나는 존재라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조금씩 단단해지면 좋겠습니다.
한가온 올림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