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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나길 Dec 10. 2020

나를 아름답다고 느낄 때

영화 <아이 필 프리티> 리뷰

  -아이 필 프리티(원제: I Feel PRETTY)/에비 콘, 마크 실버스테인/미국/2018

  -1시간 50분(110분)

 ※스포일러 주의! 영화 내용이 담긴 글이므로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이걸 봐야지, 봐야지 했던 게 벌써 2년이나 지났다니 믿을 수 없다. 어째 이 말이 내 리뷰의 단골 멘트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여하튼 제목에서부터 예고, 영화 전체 내용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일관적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I feel pretty!" 내가 나 자신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말로 정리하니 너무 단촐해진 것 같지만, 사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날씬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여성들을 비추고, 유리문 너머를 들여다보는 르네 베넷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르네는 날씬하고 예쁜 외모, 일반적으로 '이상적이라 여겨지는' 기준에 속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다. '이상적인 모습'과 그렇지 못한 '현실의 모습' 사이를 유리라는 막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연출이었다. 그 막은 투명해서 안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결코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르네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모두 외모로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르네의 목소리에는 주저함이 묻어나고, 자신감이 없다. 소울사이클을 배우러 처음 가서 프론트에서 신발 사이즈를 말할 때 사이즈를 여러 번 정정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르네는 항상 불만에 차있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패션에 관심이 많아도 타고난 외모 덕에 한계가 있고, 동경하는 명품 화장품 브랜드인 릴리 르클레어 사의 본사로 들어가지 못한 채 차이나 타운 지하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하루하루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외모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게 기준이라면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


 이 모든 게 르네의 편파적인 생각이고 착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외모라는 기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이상적이고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을 괄시하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 내내 르네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은 일관적이다. 아무런 관심도 없거나, 르네의 생각처럼 르네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이건 영화의 초반부터 후반까지 이어진다. 르네를 둘러싼 다른 배경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 없었듯이.


 자, 이제 르네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다가온다. 제발 예뻐지게 해주세요! 간절하게 소원을 빈 다음날, 소울사이클을 타다 사고로 머리를 크게 부딪힌 르네는 거울을 보고 놀라고 만다. 이게… 나?



 그렇다. 소원이 이루어져 세계최고미녀가 된 것이다. 르네의 눈에만!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를 보는 관객인 우리의 눈에도 '완벽한 르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르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최고로 아름답고 몸매마저 완벽하다. 그러나 영화는 그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완벽한 외모'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를 피한다. 중요한 건 르네가 어떻게 아름다워 보이는지가 아니다. 영화는 본인은 변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달라지지 않은 르네의 모습을 꾸준히 비춰줌으로써 르네의 내면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이제 르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본사에서 모처럼 구인공고가 났지만 스스로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지원하지 못했던 릴리 르클레어 사 안내원 자리에도 지원했다. 우연히 세탁소에서 만난 에단과도 진전을 갖는다. 르네의 착각과 오해들로 점철되어 있지만 어쨌든 모든 일이 순조롭다. 단지 보는 내가 안 순조롭다. 말 그대로 인생이 역전된(착각입니다) 르네의 행동과 말투, 태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발가벗겨서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내내 민망함에 시달려야 했다. 아 언니 그거 아니야 그만해… 넣어둬….


 비키니 대회에 당일 참가한(그래서 입은 게 비키니도 아니었다) 르네를 지켜보는 에단의 표정을 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튼 르네의 인생은 순탄하다. 에이버리 르클레어(회사 창업자 손녀)의 눈에 들어 회사에서 새로 런칭하는 저가 라인에 적극적으로 말을 얹게 되고, 남자친구인 에단과 미국 최고의 훈남(기사 타이틀임)인 그랜트가 르네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르네의 인생이 한창 물오르고 있을 때였다.


 원래 자신에게 가혹한 기준을 들이미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가혹한 기준을 휘두를 수 있다. 외모라는 잣대 하나로 자신을 재단하고 혹평하던 르네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더구나 르네는 이제 '외모'라는 기준으로 사람을 나눌 때 최상위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등극했다. 최고로 아름다운 사람은 압도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이란 것에 휘둘릴 일이 없을까? 사실 '최고로 아름답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틀 안에 갇혀 있음을 말한다.



 르네는 어디까지나 재밌고 친절한 안내원이다. 화장품에 관심이 있는 고객들에게는 말이다. 그렇기에 젊은 여성에게는 친절하지만 나이든 여성은 홀대한다. 나이든 여성은 아름다움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또, 친구들과 3 대 3 미팅에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들을 매력없다고 판단해 미팅에서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무례하게 행동한다. 이 모두가 르네가 외모라는 틀에 단단히 묶여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에이버리와 함께 간 출장에서 그랜트와 키스하기 직전, 르네는 남자친구 에단의 문자 알림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벗어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는다. '너 누구야?' 원래의 자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을 넘어설 뻔한 자신에게 몇 번이나 되묻던 르네는 실수로 샤워실 유리에 머리를 부딪히고, 결국 자신을 사로잡은 마법에서 깨어나고 만다.



 오, 맙소사. 영영 마법이 깨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르네는 절망한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르네의 대사에서 자신이 손에 쥔 힘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고 믿으며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외모라는 기준을 충족해서 손에 넣은 행운들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외모가 시들면 사라져버릴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후 르네는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고 에단과도 헤어진 채 집에 틀어박힌다. 화해를 청하며 찾아간 친구들은 르네를 받아주지 않는다. 절망과 좌절의 나날이 흐른다. 또 한 번의 기적을 바라며 소울사이클을 타러 가지만 웬걸, 열심히 운동만 하다 시간이 끝났다. 실의에 잠긴 르네의 귀에 웬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울음소리의 주인은 바로 맬로리였다. 일전에 소울사이클을 시작할 때 만났던, 르네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여성이다. 이제까지 르네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 얘기를 제대로 듣지 않거나 말을 끊으며 그런 삶을 살다니 너무 행복하겠어요! 라고 외치곤 했다. 우는 이유를 물어보자 맬로리는 남자친구에게 차였다고 말한다. 르네는 경악한다. 네? 찬 게 아니라 차였다고?


 심지어 맬로리는 르네의 극찬을 약간 흘려들으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아니, 왜? 르네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르네가 이전과 지금의 자신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르네의 내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진실을 알아채고 영화의 막이 내릴 때까지 르네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르네 혼자만의 일로 끝난다.


 누군가 진실을 알려줄 수는 있어도 깨달음이 자신의 가슴까지 녹아드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르네는 외모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삶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 르네를 둘러싼 배경은 항상 같았다. 현실에서도 그렇듯이 영화의 막이 내리기까지 사람들은 타인인 르네에게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르네가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행동들로 인해 처음에 부정적이던 사람들도 르네의 엉뚱하리만치 당돌한 점과 유쾌한 모습에 곧 매료되고 만다.


 그 외에도 아름답기 때문에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콤플렉스가 있었다. 맬로리도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고, 에이버리는 조그맣게 속삭이는 듯한 자신의 목소리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불안감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르네와 연인이 된 에단도 일반적인 '남자다움'의 기준과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많아요. 자신의 부정적인 면에 너무 집착해서 자신의 근사한 점들을 놓쳐버리거든요. 당신은 자신을 잘 알고 세상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아요.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르네에게 홀딱 매료당한 에단이 한 말이다. 이 말은 르네에게도 그렇고 에단, 에이버리, 맬로리… 나까지도 모두 포함되는 말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면에 너무 집착해서 자신의 근사한 점을 보지 못한다. 영화에서 르네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공감하고, 르네 대신 수치심을 느끼며 영화에 몰입했던 건 내가 르네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나는 내 근사한 점을 알고 있는가? 나를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애초에 예쁘다, 잘생겼다는 기준 자체도 주관적이지 않나. 물론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각자 사람을 보는 기준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 뿐 아니라 외모라는 건 취향이란 것에 많이 좌우된다. 다들 잘생겼다고 하는데 내 눈엔 별로인 경험 혹시 나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아니겠지…?


 무엇보다 외모라는 건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라, 내면이 배어나는 나의 일부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그 눈매, 휘어올라간 입 꼬리 같은 것에서 그 사람의 내면이 묻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테다.


 어려운 미션이긴 하지만, 내가 나를 아름답다고 느낄 때 내 세상은 변화한다. 원래 세상이란 것 자체가 내 해석과 태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띄게 마련 아닌가.


 누가 뭐래도 이게 나예요!



 나도, 당신도 언젠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영화에서 르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외쳤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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