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에 쓰던 거 발굴+수정
-<감정이 서툰 어른들 때문에 아팠던 당신을 위한 책>/린지 C. 깁슨/박선령/지식너머
-출간연도: 2019년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됐다. 제목부터 마음이 끌리는 책이었다. 최근의 내 과제가 부모님, 특히 엄마를 내게서 분리하고 내 삶을 다시 정립하는 것이었기에 이 책이 참고가 되겠다 싶었다. 나는 평생 부모님의 감정을 내게서 분리하지 못해서 내 감정을 우선하기보다 자연히 부모님의 감정을 먼저 느끼고 계속 거기에 치이고 있었다.
내가 읽기 전 생각했던 방향과 좀 다르긴 했지만 이 책 덕분에 알게 된 것도,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도 많았다.
우선, 나의 정서적 미성숙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미성숙한 부분들은 느껴왔고 지금까지 그로인한 결핍이나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기도 해서 부모님의 미성숙함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 미성숙함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고 자랐으니 당연히 내가 성숙할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님 아래 자랐으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도, 내 미성숙함을 발견했을 때 사실 좀 충격도 받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치유 환상과 역할 자아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잘 모르고 있었던 내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평생 내가 매달려왔던 '이상적인 모습'의 실체를 목도할 수 있었다.
부모와 감정적으로 교감할 수 없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부모가 자기에게 원한다고 생각되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으로 부모와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방법으로 일시적인 인정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친밀감을 얻지는 못한다. 아이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정서적으로 단절된 부모의 감정이입 능력이 갑자기 발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30)
아이들은 자기와 주변 사람들을 실제와 다른 존재로 변화시킬 방법을 찾으면 어린 시절의 고통과 정서적인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다고 여기곤 한다. 모든 치유 환상의 주제는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의 치유 환상은 '......라면 좋을 텐데'라는 가정법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충분히 이타적이거나 매력적이라면, 혹은 세심하고 이타적인 파트너를 만난다면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혹은 유명해지거나, 아주 큰 부자가 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한다면 본인의 인생이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치유 환상은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아이들다운 해결책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p.145~146)
여러분이 어릴 때, 부모나 양육자가 여러분의 진짜 자아에 제대로 반응해주지 않는다면,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궁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보다는 가족 내에서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줄 역할 자아 또는 가짜 자아를 발전시킨다. (p.148)
역할 자아를 취하는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계획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역할 자아를 완성해 나간다. 역할 자아가 긍정적으로 비춰지든 부정적으로 비춰지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그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긴다.그리고 어른이 된 뒤에는 자기가 부모님에게 바라던 방식대로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리라는 희망을 안고 계속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p.148)
나는 어린 날에 부모님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부모님이 좋아했던 모습들을 누덕누덕 기워서 사실은 불완전한 그 이미지에 날 끼워맞추려 평생 애써왔다.
처음으로 그게 매끈하게 이어진 하나의 조각보가 아니라 군데군데 이어지지 않아 구멍이 뚫려 있고 어설프게 기워진 누더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평생에 걸쳐 달성하려던 모습은, 몇 발짝 떨어져서 보니 어린아이가 서투른 실력으로 조각조각 이어붙인 조잡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았다.
그리고 평생 의심해본 적 없던 내 믿음들에 의문을 던지게 됐다. 이를테면, '원래 착하다는 건 희생하는 거 아니었나?' 같은 나에게만 진리였던 것들.
또, 감정은 산수 같은 게 아니어서 더하고 빼서 총합을 내는 게 아닌데.... 내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미움과 원망도 사랑과 존경도.... 서로 다른 화분에서 자라는 나무 같은 건데, 모든 감정을 뭉뚱그려 한 덩어리로 생각해서 부모에게 안쓰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때면 부모를 원망해선 안 된다며 나를 채근해왔다.
그냥 그런 감정들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건데,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 그걸 모르고 날 괴롭혀왔다. 나한테 미안해진다.
타협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됐다. 책에서 '타협은 체념하거나 상대를 포기시키는 게 아니라 서로 원하는 걸 충분히 얻었다고 느끼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난 지금까지 타협을 어쩔 수 없는 부분적인 희생이나 체념이라고 믿어왔는데 굉장히 신선한 말이었다.
책을 덮은 지금, 이제 나는 부모님에게 사랑과 정서적 충족을 채워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다 큰 한 명의 성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 명의 성인으로 서서 부모님을 바라보자 엄마 아빠라는 이름 뒤에 있는, 정서적 결핍을 느끼며 나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구하며 자라온, 그냥 나와 같은 각각의 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야 앞으로도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미운 마음이 들 때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그 결핍된 어린아이들이, 사랑이 고픈 아이였던 어른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부모님은 평생 변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변하지 않아도, 나는 변할 수 있으니까. 부모님이 어떻든 나는 나대로 행복해질 수 있는 거니까.
내가 할 일은 스스로를 돌보는 거다. 부모님이 내게 주지 못했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을, 이제 다 자란 나는 내게 해줄 수 있다.
어쩌면 좀 더 마음이 자란다면 부모님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일단 나부터 보살피자.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완전하고 충분하다는 걸 알아주자. 이 세상 그 누구도 내게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하더라도, 나만큼은 내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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