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 리뷰

by 가온나길

-<소울>/피트 닥터/2021

-1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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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증을 앓은 지 오래됐다. 오래 묵은 지긋지긋한 무기력 속에 허우적대다보면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자꾸만 되묻게 된다.


무기력과 우울 속에 오래 침잠해 있을수록 그에 대해 마땅히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빈약하기만 하고, 자괴감과 존재에 대한 수치심이 뼛속 깊이 파고든다. 자꾸만 희망을 구하고 열정을 찾으며 어떻게든 일어나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마음이 꺾여 넘어지기 일쑤다.


영화 <소울>이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음알음 들어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올해는 붉은 말의 해이니만큼 도약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이번에야말로 내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이 영화가 무기력한 내게 어떤 자극이 되어줬으면 했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어려서부터 재즈에 반해 음악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중학교 밴드부 교사로 일하면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연주하며 살아왔는데, 매번 마지막 순간에 뭔가 잘못되거나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밴드부 정규직 교사 제안과 동시에 옛 제자를 통해 도로테아 윌리엄스와 하프노트에서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 조 가드너는 그야말로 흥분상태에 빠지는데, 그러다 맨홀에 빠져 정신을 잃고 만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저 너머 세상으로 가는 계단 위에 있다. 그토록 꿈꾸던 연주를 앞두고 차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조는 그곳에서 벗어나려다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지게 되고, 제리(관리자)들의 착오로 멘토로 오해받아 '22'와 짝이 된다. 22는 지구에서 태어나길 수천 년 동안 거부하고 있는 영혼이다.



이곳의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은 마지막 한 칸을 채울 '불꽃'을 찾으면 지구통행증을 얻어 지구로 내려갈 수 있다. 22는 불꽃을 찾아 지구통행증을 얻으면 조 가드너에게 주기로 하고 조 가드너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무아지경에 빠진 이들이 오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폴과 일행들을 만나 도움을 받지만, 마음만 급했던 조가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섣불리 뛰어내렸다가 22는 조의 몸에, 조는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는 사달이 난다.



이들은 사태를 해결하고 오늘의 연주를 무사히 해내고자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이 생긴다. 거기다 영혼이 하나 빈다는 걸 알아챈 테리(대충 관리자들 중 회계사 같은 거)가 조를 찾으러 오면서 일은 더 어려워져 간다.


지구에서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바뀐 22는 이번에야 말로 그동안 찾지 못한 불꽃을 찾고자 하나 이는 빨리 몸을 되찾아 오늘의 연주를 해야만 하는 조의 바람과는 상충되어 갈등이 생긴다.


22는 조의 몸을 입은 채 도망치다가 조와 함께 테리에게 붙잡혀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돌아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꽃을 찾았는지 어느새 22의 빈 칸이 채워져 지구통행증으로 변했고, 22는 조에게 지구통행증을 주고 생과 단절된 영혼.... 길 잃은 영혼으로 변한다.



지구로 돌아간 조는 멋지게 합주를 해낸다. 그런데 오늘의 이 연주로 인생이 기가 막히게 바뀔 줄 알았지만 흥분이 가신 뒤의 일상은 달라진 게 없다. 다음, 또 다음 연주가 있을 뿐이다.


조는 22를 만나기 위해 무아지경에 빠져 삶과 죽음의 사이로 간다. 그리고 길 잃은 영혼이 된 22에게 단풍나무 씨앗을 쥐여준다. 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22에게 지구통행증을 돌려주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저 너머 세상으로 가는 계단에서 제리가 자신들에게 영감을 주어 고맙다며 조에게 다시 인생을 살 기회를 주면서 묻는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생각이에요?' 조는 '글쎄요... 분명한 건 매순간 즐기면서 살 것 같아요.' 라고 답한다.



삶에는 목적이 없다. 정해진 답이나 사명 같은 것도 없다. 내가 정한 대로 살아갈 뿐. 영화 <소울>을 보고 나서 왜 그렇게 울었는진 모르겠는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며 엄청 울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내게 가혹하게 굴어서일까.


삶에 정답도, 목적도 없다는 걸 배웠으면서도 또 다시 내가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좇으며 나를 괴롭혀왔다.


22는 처음엔 지구의 모든 게 싫다고 생각했고, 신체운전시험에서 몇 백 번이나 떨어졌다던 그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이는 게 아주아주 서툴다.


그런 그가 지구를 직접 겪으며 소중한 순간들을 접하고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하게 된 게, 서툴던 걷는 걸 잘하게 되고 어쩌면 삶의 목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즐겁게 느끼게 됐다는 게 좋았다.


'어쩌면 하늘 보기나 걷는 게 내 삶의 목적일지도 몰라~ 내가 또 걷는 걸 잘하잖아.' 라던 22의 말에 괜히 뭉클하고 울컥했다.



또, 사람이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능숙하게 걸을 수 있게 되는 그 과정들이 떠올랐다.


대체로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렇게 큰 걸 기대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길, 운동을 잘하길, 다른 누구보다 뛰어나길, 좋은 학교를 가길, 좋은 직장을 가길, 돈을 많이 벌길 바라지 않는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는 무사히 태어나줘서, 건강해줘서 무사히 존재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했던 때도 있었을 거다.


아장아장 서투르게 걷고 더듬더듬 말을 하고... 내가 무언가를 해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기쁨이 되었던 때도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대체 언제부터 무엇을 해야만, 무엇을 이루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그래야만 존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었던 걸까?



언젠가는 그저 하나하나가 놀랍고 즐겁고 신나는 체험이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이 세상에서 아등바등하며 애쓰는 나를 비롯한 존재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 태어나 살아간다는 데에는 의미같은 게 없다. 그냥 태어나고, 태어났으니 살아갈 뿐. 의미를 부여하고 사명을 부여하고 가치를 입히고... 해야만 하는 수많은 것들을 정한 건 바로 나다. 그 누가 아니라.


그렇다면 그동안 살아오며 내 삶에 덕지덕지 입혀져온 거창한 의미들을 걷어내고 소소하고 작은 반짝임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와는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나온다. '불꽃'이 삶의 목적을 찾았을 때가 아닌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을 때 타오른다는 게 좋았다.


자주 길을 잃고 마는 영혼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가 목표나 바란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들에 집착해서 삶과 나를 단절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22의 보물들도 인상적이다. 22가 지구에서 모은 보물들은 어떻게 보면 하잘 것 없는 것들이지만 22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반짝이고 생동감 넘치는 보물들이다.


어쩌면 모든 게 그런 걸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것도,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볼 땐 볼품없어 보이는 것도 얼마든지 의미있고 반짝이는 보물들이 될 수 있다는 것.


행복이란 그렇게 거창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단풍나무 씨앗, 처음 먹어본 피자나 사탕, 귀여운 실타래 같은... 그런 소소한 것들일 수 있겠다.



젊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 가 물었지

"바다라고 하는 걸 찾는데요"

"바다?" 나이든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가 바다야"

젊은 물고기는 말했지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


어쩌면 나는 삶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왔던 걸지도 모른다. 조 가드너가 내린 답처럼 삶의 의미란, 행복이란 그런 작은 순간, 사소한 반짝임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있지 않다면, 이 지구로 내려와 태어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감각.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살아있는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들. 그 감각들을 온전히 누리며 그저 매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사실 삶이란 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22가 조의 몸에 들어가서 평소와 다른 언행을 보인 덕분에 기존의 인간관계(어머니와 미용사 데즈)에서 다른 면모를 보게 되고 관계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도 인상적이었다.


조는 음악, 재즈 피아니스트로의 삶 외에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도 않았기에 당연히 데즈도 미용이 그의 운명일 거라 생각해왔다.


실은 데즈가 원래 수의사를 꿈꿨고 수의학보다 미용학교가 더 학비가 싸서 미용 쪽으로 왔다는 것, 그럼에도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생각이 열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떨까? 나는 또 어떤 나만의 시선과 생각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과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가끔 조가 짜증나긴 했지만(그야 죽음을 눈앞에 뒀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재밌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왜 많이들 인생 영화로 꼽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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