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거울을 본다. 음, 어제와 별 다를 게 없군. 헉! 뾰루지가 났네…. 그것 외엔 평소와 크게 다른 건 없는 것 같다. 길을 걸어다니다 스쳐지나가는 쇼윈도나 유리창, 지하철 스크린 도어 등에서 우리는 익숙한 우리의 모습을 본다. 각도나 거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늘 같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여기 그 일상적인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의 김우진과 드라마 <뷰티인사이드>의 한세계가 바로 이들이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드라마 <뷰티인사이드>는 영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영화는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봤었는데, 드라마는 벼르기만 한참 하다 겨우 마음을 먹고 보았다. 어서 보라며 열띤 재촉을 하던 친구의 머릿속에서 드라마의 기억이 흐릿한 안개 속에 잠길 만큼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후였다.
미루던 게 언제냐 싶게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나니, 드라마와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게 영화에 대해 남아있는 기억이라곤 영상미가 예쁘고 배우 한효주 씨가 예뻤으며 왠지 뒷맛이 찜찜했다는 것 정도였다. 마침 넷플릭스에 영화도 있겠다, 드라마의 기억이 희석되기 전에 영화도 빨리 봐버렸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뷰티인사이드>와 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 <뷰티인사이드>.
1. 원작
영화 개봉 당시 SNS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통해 영화가 데이비드 리바이선의 소설 <에브리데이>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 검색해보니 영화 <뷰티인사이드>는 도시바X인텔의 합작 광고 <더 뷰티인사이드>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드라마에 <에브리데이> 인용문도 있어서 소설이 원작이라고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는데?!
소설 <에브리데이>, 2012년 출간. 국내에는 2015년에 출간됐다.
광고 <더 뷰티인사이드>는 여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합작 광고로, 무슨 상도 받았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간 광고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광고와 책의 시기가 비슷한 것 같긴 한데, 뭔가 영향이 있었던 건지 우연히 소재가 비슷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영화는 광고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영화 내에서 주인공 김우진이 가구 디자이너로 일할 때 쓰는 ‘알렉스’라는 가명과 가구 브랜드 ‘리아’는 광고 <더 뷰티인사이드>의 주인공 알렉스와 알렉스가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소설 <에브리데이>의 내용을 영화화한 영화 <에브리데이>도 있다. 2018년에 개봉한 마이클 수지 감독의 작품이다. 소설도 영화도 아직 안 봤지만 나중에 보고 <뷰티인사이드>의 내용과 비교해보고 싶다.
2. 김우진과 한세계 - 1
김우진과 한세계.
영화 <뷰티인사이드>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사는 남자 김우진의 이야기였다면, 드라마 <뷰티인사이드>는 한 달에 한 번, 1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여자 한세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두 사람의 삶을 '일반적인' 범주 밖으로 몰아세우는 비밀은 그들의 직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구 디자이너인 김우진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사람들이 모두 앉는 자세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서 맞춤 가구를 만든다. 한세계는 아이, 어른, 외국인 할 것 없이 매달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살려 배우로 일한다. 어쩌면 우진처럼 매일 모습이 바뀌는 게 아니라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 풍부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의 한상백과 드라마 <뷰티인사이드>의 유우미, 류은호.
그리고 둘에게는 비밀을 아는 친구들이 있다. 김우진에게 상백이 있다면, 한세계에겐 우미와 은호가 있다. 이 친구들은 두 주인공에게 든든한 마음 둘 곳이며, 극 중에서는 감초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상백과 우미는 정서적인 받침대뿐 아니라 주인공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끈이자 조력자 역할을 한다. 상백은 '알렉스'를 대신해 얼굴 내미는 일을 도맡아 하는 가구 브랜드의 사장이고, 우미는 한세계가 소속되어 있는 월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다. 이렇게 상백-우미는 주인공들이 완전히 사회공동체 밖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게 단단히 이어주고, 절대적 ‘내 편’이 되어주며 주인공들이 최소한의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이 있기에 주인공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의 홍이수와 드라마 <뷰티인사이드>의 서도재.
영화와 드라마는 각각 김우진-한세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재밌는 건 둘의 사랑이 다른 형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김우진은 가구 매장에서 일하는 홍이수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의 관계는 홍이수가 김우진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그가 세상에 속하게 되는 형태를 띤다. 드라마는 서로 자기를 괴물이라고 여기는 두 사람이 만나 위안을 받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받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차이는 아무래도 설정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 같다. 매일 모습이 변하는 김우진과 한 달에 한 번 모습이 바뀌는 한세계. 그리고 '범주의 안'에 있는 홍이수와 안면실인증으로 인해 '범주 밖'에 있는 서도재. 안면실인증은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하는데, 자기 자신의 얼굴도 인식할 수 없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도 서도재가 거울에 비치는 얼굴의 형태를 인식하지 못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러다보니 ‘범주 안’의 홍이수가 ‘범주 밖’의 김우진을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한세계와 마찬가지로 ‘범주 밖’에 속해 있는 서도재는 자신처럼 밖의 존재인 한세계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게 동질감을 느낀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서로를 받아들인다. ‘밖’에 있던 두 사람이 만나 마침내 '안'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드라마라는 매체의 차이도 두 사랑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오롯이 김우진의 이야기를 담는다. 후반부에 홍이수의 시점이 잠깐 나오긴 하지만 그나마도 홍이수가 김우진을 받아들이는 계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김우진의 이야기라고 봐야겠다.
영화가 사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김우진의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면, 드라마는 한세계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여러 서사와 감정선, 갈등과 진전을 담아낸다. 시간이 한정된 영화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한세계와 서도재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둘의 상처와 연애, 성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