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성 당뇨 검사 3

by 가온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데스크에서 접수를 마쳤다. 공복 혈당부터 측정을 해야 했기에 이내 채혈실에서는 내 이름이 불렸다.


이미 공복 혈당이 기준치 초과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여서인지, 오히려 덤덤한 마음이 더 컸다. 그러면서도 병원까지 오는 30분 동안 혈당이 '1'이라도 떨어져 있기를 바라며, 왼쪽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고작 1의 차이에 하루의 기분을 맡기고 있는 내가 살짝 우습게 느껴졌다.


간호사 선생님은 능숙하게 채혈을 마치셨고, 이내 삐- 하는 혈당계의 소리가 들렸다.

“몇으로 나왔어요..?”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작아졌다.


“97이요~ 괜찮아요~ 앞으로 세 번 남은 검사 잘 통과하면 돼요.”


집에서 쟀을 때보다 오히려 높아진 수치. 공복 혈당은 무조건 패스해야 한다고 생각했건만, 시작부터 기준치를 넘겼다는 사실에 마음속에 돌 하나가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군것질을 줄이고, 괜히 과일 한 점에도 죄책감을 느끼며 버텼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내 몸 어딘가에,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에 정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확신하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에서 힘이 빠진 것이 느껴졌는지, 간호사 선생님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족력 없으시면 대부분 통과하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지난번 검사 때보다 더 강력해 보이는 포도당 음료를 손에 쥐여주셨다.


“다 드시고 본인 확인받고 통 버리셔야 해요. 천천히 드세요. 급하게 드시다가 토하는 산모분들 꽤 계시거든요.”


병원 로비로 나와 가장 편해 보이는 소파를 찾았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던 터라, 처음 한두 모금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하지만 이내 묵직한 약 맛의 시럽 같은 단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그걸 다 마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다섯 번쯤 나눠서 겨우 비웠다.


“한 시간 뒤에 내려오시면 돼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배정받은 병실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임당 재검사로 최소 3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는 임산부들에게 1인 병실을 무료로 제공해 준다는 점이었다.


인터넷에서 '임당 재검사 후기'를 검색했을 때에는 로비 의자에서 시간을 버텼다거나, 복도를 서성이느라 힘들었다는 후기들을 꽤 봤기에 내심 걱정했는데, 침대와 TV까지 갖춰진 작은 병실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이었다.


앞으로 한 시간을 뭘 하며 보내야 할까 고민할 새도 없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유튜브 쇼츠 몇 개를 보다 보니 어느새 50분이 흘러 있었다. 시간을 이렇게 허무하게 써버린 스스로가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간이 빨리 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서 가져온 혈당기가 떠올랐다. 공복 혈당 때 그랬듯, 만약 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결과를 스스로 먼저 알고 싶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리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어쨌든, 그 불안한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바리바리 챙겨 온 자가 혈당계를 꺼내 들었다. 늘 그랬듯 왼손 네 번째 손가락 옆의 여린 살을 콕 찔렀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유난히 따끔했다.


삐-

시약을 마신 뒤 1시간 혈당은 180 미만이어야 통과인데, 정식 채혈 10분을 앞둔 나의 혈당은 187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혈당계의 작은 화면 속 숫자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했고, 순간적으로는 스스로에게 화도 났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건 내 잘못이라기보다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탓할 필요도, 나를 몰아붙일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저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다음을 준비하면 되는 거였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채혈실로 내려갔다. 시약 복용 정확히 1시간 후, 다시 내 이름이 불렸다.


이제는 익숙해진 채혈.

이번에는 오른쪽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팔을 내밀었다. 이내 채혈이 끝났고, 다시 혈당계 소리가 들렸다.




삐-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결과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괜히 결과를 알았다가 마음만 더 심란해질 것 같아서 그냥 나가려다가, 채혈실 문턱을 넘기 직전에 뒤돌아 물었다.


“몇 나왔나요?”

“152 나오셨어요~”

“네?152요? 네… 감사합니다. 이따가 다시 올게요.”


얼떨떨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10분 사이에 혈당이 30이나 떨어지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쨌든 결과는 통과였다.


가장 불안했던 관문을 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몸 안에 박혀 있던 큰 돌덩이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병실로 올라가는 동안 생각했다.

'혹시 병원 혈당기계가 잘못된 걸까?'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오히려 내가 직접 구매한 자가 혈당기에 오차가 있었던 게 더 타당했다. 생각해 보니 집에서도 측정할 때마다 적게는 5, 많게는 20 가까이 차이가 나곤 했었다. 그러니 지금 결과가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닐지도 몰랐다.


얼떨떨하긴 했지만, 일단 가장 걱정했던 1차는 통과.


2차와 3차 채혈은 상대적으로 마음이 조금 놓였다. 기준치가 각각 155, 140 미만이었고, 이미 시약 복용 후 1시간 이후의 수치가 152였으니 내 몸이 갑자기 반란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통과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난 일주일 내내 가슴 한가운데 눌러앉아 있던 불안이 조금씩 옅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시간 동안은, 이 아늑한 1인실을 최대한 즐겨보자. 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2시간, 3시간 뒤 재검사를 모두 마친 결과, 각각 140과 124가 나왔다.


공복 혈당은 비록 통과하지 못했지만, 총 4번의 검사 중 3번을 통과하여, 다행히 임신성 당뇨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 발걸음은 병원으로 향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가벼웠다.


같은 풍경인데도 창밖은 더 평화로워 보였고, 사람들의 표정도 이상하게 더 다정해 보였다. 내 몸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버텨주고 있는 것 같아 큰 위안이 됐다.


다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고위험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 앞으로 과일이나 군것질은 조금 조절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가뿐해진 마음으로 제일 먼저 초콜릿 한 입을 떠올렸지만, 그 달콤한 유혹을 꾹 눌러 참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참는 일이 전혀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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