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성 당뇨 검사 2

by 가온


이 비보를 가장 먼저 남편에게 알렸다.


그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동안 군것질을 자주 한 내 탓인 것 같다는 자책을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던 걸까. 나는 한탄 섞인 말들을 덧붙였다. 남편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담담했다.


“여보 원래 당뇨 없잖아. 건강한 편이기도 하고. 아마 어제 잠 설쳐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걸 수도 있어.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


이상하게도 그 말이 꽤 위안이 되었다.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누군가가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탓'이 아니라는 듯 한 남편의 반응이 고맙기도 했다.


반면, 친정 엄마에게는 차마 이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임신 사실을 안 직후부터 엄마는 하루에 한두 번씩 꼭 전화를 걸어 내 몸 상태와 컨디션을 여쭤보셨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더 세심하게 나를 챙겨주셨다. 그런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분명 걱정이 앞설 것이고, 그 걱정 끝에는 어김없이


“그러게 군것질 좀 줄이라니까.”


같은 현실적인 직언이 따라올 것 같았다. 물론 그 말이 틀린 건 아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팩트 폭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괜히 서운한 마음만 커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어쩌면 임신성 당뇨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남편과 내 동생만 조용히 알고 있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혈당 측정기를 주문하는 것이었다.


임신성 당뇨 2차 재검사는 병원에서 공복 혈당을 측정한 다음, 100g 포도당 시약을 복용한 1시간, 2시간, 3시간 후의 혈당을 총 네 번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체로 공복 혈당은 95mg/dl 미만, 1시간은 180 미만, 2시간은 155 미만, 3시간은 140 미만을 기준으로 삼으며, 이 중 두 번 이상이 기준치를 초과하면 임신성 당뇨로 진단된다고 했다. 만약 수치가 약간 높은 정도라면 식이 조절과 운동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정도라면 내과 치료와 함께 인슐린 투여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남은 일주일 동안 최대한 내 몸의 혈당 패턴을 파악해보고 싶었다. 아침 공복 혈당은 어떤지, 어떤 음식을 먹으면 수치가 오르는지, 식후 얼마나 지나야 안정되는지. 재검사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남은 임신 기간 동안 내 몸을 조금 더 잘 이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로켓배송으로 혈당기는 도착했고, 저녁을 먹은 다음 시간에 따른 혈당의 변화를 알아보기로 했다.




일단 저녁은 샐러드로 정했다.


집에 있는 야채를 탈탈 털어 넣고, 부족한 단백질은 삶은 계란 두 개로 채웠다. 마땅한 드레싱이 없어서 유튜브에 ‘혈당 조절 샐러드드레싱 레시피’를 검색한 뒤, 간장을 베이스로 한 가벼운 소스를 급하게 만들어 뿌렸다. 오랜만에 가벼운 식사를 하니 몸은 편했지만, 포만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요깃거리 하나를 집어넣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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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먹고 한 시간 뒤 혈당을 재보니 130이 넘는 수치가 나왔다. 기준상으로는 안전한 수치였지만, 내가 먹은 거라곤 풀과 계란 두 알 뿐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혈당 수치가 생각보다 높게 느껴졌다. 이후 두 시간 뒤 측정 한 혈당 수치는 조금 떨어졌지만, 이상하게 마음속 불안은 줄지 않았다.


일단 매일 아침 공복 혈당부터 꼼꼼히 재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혈당기를 들었다. 전날 저녁 메뉴가 공복 혈당에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샐러드를 먹은 다음 날 아침 공복 혈당은 93.

에라 모르겠다 싶어 과일까지 디저트로 먹은 다음 날은 83.

된장찌개와 현미밥 위주의 건강한 한식을 먹은 다음 날은 90.

수치 상으로 큰 차이가 없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공통점은 찾을 수 없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숫자들이 측정되었다.


내 몸의 혈당 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건지, 아니면 임신이라는 변수 앞에서 모든 것이 예측 불가해진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임신을 하면 호르몬 변화 때문에 혈당이 들쑥날쑥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은 군것질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좋아하던 초코파이, 초콜릿, 초코쿠키 같은 간식은 끊고 샐러드와 한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했다. 신경은 예민해졌고, 포만감은 적었지만,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혈당은 끝내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식후 1시간보다 2시간 혈당이 더 높게 나오기도 했고, 같은 시간에 손가락을 바꿔 혈당을 측정하면 적게는 5, 많게는 20까지 차이가 났다.


그 숫자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임당 재검을 통과하는 것도 어쩌면 그날의 컨디션이 좌우하는 영역일 수 있겠구나.'

괜히 주눅이 들었다.


임신 28주 무렵, 식단 조절 덕분인지 체중은 1킬로그램 정도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1킬로그램은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너무도 사소한 숫자였다. 내가 정말 바랐던 건 체중 감량이 아니었다. 그저, 재검사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뿐이었다.


음식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일은 기쁜 마음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몸 어딘가에 문제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조절해야만 하는 상황에는 정말 처하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재검사를 하는 날 아침이 되었다.


최소 8시간 이상 금식해야 했기 때문에, 전날 저녁 7시쯤 간단한 샐러드를 만들어 먹은 것이 마지막 식사였다.

병원에서는 최소 3시간 이상 머물러야 했다. 9시 30분까지 도착해 공복 혈당을 재고, 시약을 마신 뒤, 1시간·2시간·3시간 간격으로 채혈을 해야 했다.


목은 바짝 말랐고, 배는 고팠다. 지난번엔 질색했던 그 오렌지 맛 시약조차 오늘은 차라리 빨리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집에서 먼저 공복 혈당을 재보기로 했다. 직접 산 혈당기를 손에 들고, 왼손 네 번째 손끝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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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95.


공복 혈당 기준이 95 미만인데, 이미 95였다. 설마 싶어 다른 손가락으로 한 번 더 수치를 측정했다. 결과는 같거나, 오히려 조금 더 높았다.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혈당을 쟀을 때에는 90을 약간 밑돌거나 살짝 웃돌았지, 95가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왜 하필 오늘일까... 특히나 자가 혈당기의 정확도를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마음속 불안은 더 커졌다.


총 네 번의 검사 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공복 혈당이었다. 시작부터 꼬이면, 나는 정말 임신성 당뇨 산모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공복 혈당만은 꼭 사수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바닥까지 꺾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오늘은 왔고, 나는 가야 했다. 주저할 새도 없이 자가 혈당기와 책 한 권, 휴대폰 충전기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세 시간 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부디 훨씬 가벼운 마음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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