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성 당뇨 검사 1

by 가온


임신 기간에는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해, 시기에 맞는 검사를 받으며 태아의 상태를 확인한다.


임신 초기처럼 변수가 많은 시기에는 보통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다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4주 간격으로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임신 후기, 예정일이 가까워질수록 다시 2주 혹은 1주 간격으로 병원을 찾으며 태아의 상태와 출산이 임박했는지를 살핀다.


이제 정밀 초음파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남아 있는 큰 검사 중 하나는 ‘임신성 당뇨 검사’였다.


임신성 당뇨(임당)란, 임신 중 혈당 조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임신 전에는 특별한 당대사 이상이 없었더라도 임신을 하면 태반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슐린 저항성이 생길 수 있고, 그 때문에 혈당을 낮추는 기능이 떨어져 당 수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임신성 당뇨는 전체 임산부의 3~4% 정도에서 발견되는데, 기형아, 임신 중 태아 사망, 임신중독증, 거대아, 신생아 저혈당 등 여러 합병증과 연결될 수 있어 미리 검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만약 위험 수치가 나오면 식이 조절이나 필요에 따라 인슐린 치료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도 했다.



4주 전 병원을 방문했을 때, 임당 검사 1시간 전에 미리 마셔야 하는 시약을 받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그 약을 마신 뒤 검사를 하는 날이다.


근 한 달 동안 냉장고 안에 들어 있던 시약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무슨 맛일지가 궁금했다. ‘글루오렌지’라고 적힌 흰 플라스틱 통. 겉면에 오렌지 이미지가 슬쩍 그려져 있어서인지, 괜히 상큼한 오렌지 음료 맛을 상상하곤 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50g짜리 포도당이 들어 있는 시약 150ml를 마신 뒤, 정확히 1시간 후 병원에 가서 채혈을 하면 된다. 혈당 수치가 140 미만이면 통과, 그 이상이면 보다 정밀한 2차 임당 검사를 받아야 한다.


냉장고 속에서 차갑게 식은 시약을 꺼냈다. 큰 요구르트처럼 생긴 흰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열고, 먼저 혀끝에 살짝 대 보았다. 분명 오렌지 향은 맞았다. 그런데 어렸을 때 먹던 브루펜 시럽처럼 묘하게 되직한 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기대했던 상큼한 과일 음료라기보다는, 누가 마셔도 “아, 이건 약이구나” 싶을 정도의 달콤한 시럽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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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흠…”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애써 한 모금씩 삼켰다. 어제 저녁이후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인지, 단맛이 목을 타고 내려갈수록 괜히 속이 묵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애써 참으며 시약을 끝까지 다 마신 뒤, 시간을 확인하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산모수첩을 간호사분께 건네며 시약을 마신 시간을 말씀드렸고, 정확히 1시간이 지나자 채혈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괜히 긴장이 되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채혈실로 들어갔다.


옷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자, 이내 채혈이 시작됐다. 주사기 절반쯤 혈액을 채운 뒤, 간호사분은 혈당기로 바로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곧 결과 나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간호사는 혈당 검사기에 붉은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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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178


“아이고, 수치가 178이 나와서 재검사를 하셔야겠네요.”

“네?178이요?저 원래 당뇨 없는데… 이럴 수도 있나요?”

“임신하면 호르몬 변화 때문에 이런 경우 꽤 있어요. 혹시 당뇨 가족력 있으세요? 가족력 없고 원래 당뇨 없으셨으면, 재검에서는 대부분 통과하시더라고요.”


간호사분은 분명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정상 수치가 140 미만인데, 178이라니.

나는 애초에 재검 가능성 자체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내가 임신성 당뇨일 수도 있다니.'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 앞에서 눈앞이 갑자기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임신성 당뇨로 확정되면 앞으로 남은 세 달 동안 탄수화물, 초콜릿, 달달한 음료는 다 끊어야 하는 걸까. 이미 임신 때문에 좋아하던 많은 음식들을 포기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샐러드만 붙들고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런데 왜 수치가 이렇게 높게 나온 걸까.

나름 음식의 양을 조절했기 때문에 살이 많이 찐 것도 아닌데?

혹시 어제 저녁, 속이 불편해서 소화제 대신 마신 매실청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저녁에 김치찌개를 먹지 말았어야 했나.

그동안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었나.

아니, 그런데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은걸 어떡해.

임신 중에는 먹고 싶은 걸 먹어야 좋은 거 아니었나.


별별 생각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수치가 거짓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뒤 임신성 당뇨 재검사 일정을 예약해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적어도 이 일주일만큼은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 보자고. 군것질은 끊고, 건강식 위주로만 먹으며 지내보자고.


물론 임신성 당뇨는 호르몬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혈당 수치가 전날 무엇을 먹었는지와는 큰 상관이 없다고들 했다. 초콜릿을 먹든, 샐러드를 먹든, 걸릴 사람은 걸리고 안 걸릴 사람은 안 걸린다는 말도 맞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은 일주일 동안 정크푸드를 먹으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몸이 지금 얼마나 혈당을 조절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딱, 오늘까지만 초코파이 하나 먹자.

그리고 내일부터는 진짜 클린식이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렇게 스스로와 작은 약속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일주일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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