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템빨이라던데

by 가온


임신성 당뇨 검사까지 마쳤으니 이제 큰 산은 다 넘은 느낌이었다. 어느덧 임신 30주가 된 내 배는 누가 봐도 '아, 임산부구나' 생각할 정도로 제법 도드라져 있었기에, 이제는 슬슬 육아템이나 아기 용품을 준비할 시기였다.


주변을 보면 육아템을 준비하는 시기는 참 제각각이었다. 임신 초기부터 '핫딜'로 구매한 제품을 하나씩 모아두는 사람도 있었고, 출산이 임박해서야 리스트를 꺼내 한 번에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였다. 몇 달 뒤에 쓸 물건들을 미리 집 안에 들여놓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중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어떤 것부터 사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마음 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혹시나…’ 하는 생각도 남아 있었다. 임신이라는 것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이미 몇 번이고 체감한 터라,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두는 게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30주를 넘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무거워질 몸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육아템 구매를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육아템을 구입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온라인몰, 오프라인 매장, 핫딜, 베이비페어, 중고 거래, 심지어는 대여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선택한 건 베이비페어였다. 마침 킨텍스에서 대형 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사전 등록까지 마친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특히, 선착순 200명에게는 사은품을 제공한다고 했기에, 박람회장 오픈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몸을 움직였다.


박람회가 열리는 장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임산부거나, 아이를 동반했거나, 임산부 뱃지를 달고 있거나 하는 가족들을 어디서든 볼 수 있었기에,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남편과 이동했다. 그리고는 구름 같은 인파에 다소 놀랐다.


분명, 박람회 오픈 20분 전이었음에도 우리 앞에는 족히 200명은 넘어보이는 대기 인원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몸을 움직였음에도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허탈함이 느껴지면서도, 이 많은 동지(?)들이 나와 함께 임산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에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다행히 '선착순 200명'은 임산부 만을 기준으로 하는 숫자였기 때문에 나는 '130'번으로 사은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육아 용품을 구매해본 적이 없었고, 사실 관심조차 없었다. 그랬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박람회장에 도착했다가는 체력은 체력대로, 주머니는 주머니대로 털릴 것 같다는 막연한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전날 밤, 남편과 함께 부랴부랴 ‘구매할 육아템 리스트’를 작성했다. 부지런한 누군가가 각종 블로그에 정리해둔 정보와 맘카페, 육아 커뮤니티의 인기 글들을 짜집기해 만든,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은' 우리만의 체크리스트였다.


육아를 위한 기본템이라 할 수 있는 젖병과 세척 용품부터 각종 의류, 청소용품, 세면용품까지, 나름 알짜배기라고 생각한 물건만을 선별하여 작성한 리스트를 손에 꼭 쥔 채 남편과 나는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큰 박람회장을 멀뚱멀뚱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무엇부터 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서로 눈치만 보게 되는 묘한 시간이 흘렀다.


다양한 육아용품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자극적이었다. 리스트에 없던 제품들까지 하나같이 ‘혹’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히 “이거 하나면 어린이집 졸업할 때까지 써요”라는 설명과 함께 등장한 이불세트는 꽤나 강력했다. 3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이었지만, 신생아 때부터 대략 7년을 쭉 쓸 수 있다는 말에, 지갑을 열지 않으면 손해인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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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에 참여한 업체도 많았고, 그만큼 '사야 할 것 같은 물건'도 넘쳤다. 전날 작성한 체크리스트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여러 사람들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담아내기 바빴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내 손에 쥐여 진 그 종이 한 장이 꽤나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건 왠지 필요할 것 같은데?’

‘아, 지금 안 사면 뭔가 손해일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을 들게하는 물건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장했고, 제품을 판매하고 계시는 분의 입담은 또 왜 그렇게 좋은지, 이상하게 그 홍보 멘트를 듣고 있자면 정신이 빨려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육아는 장비빨, 템빨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는데, 예산만 넉넉했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카테고리의 제품을 하나씩 채워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통장 속 잔고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우리 일단 필요한 것들만 보자.”

이어지는 그의 말에, 이내 이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해서 머릿속에서는

'진짜 필요한 것인가', '정말 합리적인 가격인가?'

라는 질문을 위한 노력의 시간이 이어졌고,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체크리스트를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박람회 특가가 온라인몰의 가격보다 확실히 저렴한지, 오늘만이 정말 '기회'인 것인지도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래, 우리는 이미 기준을 정해두었다.


-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

- 타인에게 동조하는 것이 아닌, '우리 상황'에 맞는 것

- 그리고 감당 가능한 가격인 것


이 기준으로 물건들을 하나씩 다시 살펴보았다.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되는 것들, 대체 가능한 것들, 혹은 굳이 없어도 될 것 앞에서는 과감히 눈길을 돌렸고, 마음이 '혹' 할 때 마다 통장 속 잔고를 생각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닌 끝에, 우리는 생각보다 가벼운 몸으로 박람회장을 나왔다. 손에 들린 쇼핑백은 무겁지 않았지만, 오히려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그래, 잘 산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주차장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좋은 장비가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으면 분명 편해지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을 ‘어떻게, 언제, 어떤 기준으로’ 들이느냐의 문제.


필요할 것 같아서,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갖고 싶으니까, 이쁘니까 무턱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우리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맞는 육아 준비 방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박람회장을 나서며 슬쩍 보았던 ‘오늘만 이 가격’이라는 문구와, 사람들 손에 가득 들려 있던 쇼핑백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필수 아이템이 아닌게 분명하지만 단순이 모양과 디자인이 예쁜 제품들도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내일 아침부터는 나도 온라인 핫딜을 찾아다녀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조용히 하며, 나는 살짝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집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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