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은 할 수 없다만) 출산 방법을 결정했고, 아기 용품 구매도 마쳤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해야 할 일 중, 이제 남은 건 아기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글 이름을 갖고 있다. 한자가 없는, 이름 그대로가 의미가 되는 한글 이름. 다행히 성과 이름이 잘 어우러지는 덕분에 이름을 처음 듣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름 예쁘다'라고 칭찬을 해주시지만, 정작 어렸을 적의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 이름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 무렵이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으니,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오히려 이 이름이 불편했다.
초등학생은 이름으로 별명을 만드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김지훈'처럼, 성인이 보았을 때 놀림의 포인트가 전혀 없어 보이는 이름도 '김치'가 되는 마당에, 이름 자체가 하나의 단어인 내 이름은 다수의 개구쟁이들에게 아주 달콤한 먹잇감이었다. 교과서에 내 이름과 같은 단어가 나오기라도 하면, 괜히 뒤를 돌아보며 히죽거리던 아이들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는 그 표정과 눈빛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
특히나 내 이름은 학기 초에 아주 빛을 발하였다. 당시 나는 꽤나 소극적인 편이었기에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에 은근한 두려움을 느끼던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소 튀는 이름 덕분에 (특히나, 2000년대 초반 즈음에는 한글 이름이 지금과 같이 대중적이지도 않았다) 출석부를 뒤져가며 발표를 시키시는 선생님들의 레이더망을 거의 벗어날 수 없었다. '아.. 왠지 내가 걸릴 것 같아.'하고 생각이 들 때면, 거의 높은 확률로 나는 선택받은 자가 되었고, 그럴 때마다 교실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도 내 특이한 한글 이름이 불러온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나. 선생님은 아침 자습시간에 '본인의 이름을 한자로 20번 노트에 쓰세요.'라는 과제를 내주신 적이 있었다. 열심히 본인의 한자 이름을 노트에 채워나가는 친구들 사이로, 나는 '성'만을 한자로 써야 하는지,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해, 혼자 동떨어진 기분을 느껴야 했다.
이런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 아이의 이름만큼은 너무 튀지도 않으면서(그렇다고 흔하지도 않고), 누가 불러도 자연스럽고, 오래 남는 이름이었으면 했다. 또한, 남편과 나만의 의미를 담은 이름을 직접 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태어나는 날의 흐름을 고려하여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 또한 보완해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주는 ‘온전히 자기 것’이니까, 내 기준에서 '완벽'했으면 했다.
선택제왕을 할 예정이었기에, 태어날 날짜와 시간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의 사주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은 기본이었고, 챗GPT의 도움도 받았다. 물론 그 결과를 100% 신뢰할 수는 없었기에, 명리학을 공부하는 분들의 글도 함께 찾아보며 최대한 교차 확인을 했다.
그렇게 모은 정보들은 대략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화(火)와 토(土)는 충분하지만, 수(水)의 기운이 부족하고… 화(火)가 강해 자칫 독단적인 성향이 될 수 있으므로…"
결론은 간단했다. 이름에 ‘물(水)’의 기운을 보완해 주면 좋다는 것. 물론 이것이 정답이라 할 수는 없고, 또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부족한 부분은 조금이라도 채워주고 싶었다.
남편과 함께 물(水)의 의미를 갖는 한자 단어를 찾아보았다. 河(물 하), 潤(윤택할 윤), 露(이슬 로), 潾(맑을 린)... 낯설지만 예쁜 글자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그중 하나를 골랐고, 그와 어울리는 다른 한 글자를 붙여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발음이 예쁘면 의미가 아쉽고,
의미가 좋으면 너무 흔했고,
겨우 찾은 이름은 입에 잘 붙지 않았다.
하나가 충족되면 하나가 아쉬운, 끝이 보이지 않는 선택과 창의력 발휘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이름과의 씨름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냥 철학관 가서 지을까…' 하는 생각이 열 번쯤은 스쳤다.
그럼에도 끝까지 우리가 직접 이름을 짓기로 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건, 우리가 아이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민하고, 고르고, 포기하고, 다시 선택해서 만든 이름과 그 과정 자체를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름과 씨름한 지 거의 2주 만에, 아주 어렵게, 하지만 보람되게, 아이의 이름을 정했다.
그 이름을 몇 번이나 입 밖으로 불러보았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아이인데, 이상하게도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름을 불러보니, 이제 곧 부모가 된다는 것이 조금은 실감 나기 시작했다.
이제 이름까지 정해졌다.
정말로, 앞으로 남은 거라곤 웃는 얼굴로 우리가 서로 만나는 것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