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낳기로 했다

by 가온


나는 엄마가 3일 동안 진통한 끝에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라고 했다. 35년 전, 지금과 같은 의료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도 않았을 당시, 3일 간 진통을 하고 있던 이십대 후반의 임산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름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던 산부인과 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의 전원을 권유했다. 이러다가는 산모도, 아기도 위험할 것 같다고 확신한 나의 아버지는 부랴부랴 전원을 위한 절차를 밟았는데, 다행히도 그 순간 3일 간 엄마를 지겹게도 괴롭힌 끝에, 나는 무사히 태어났다.




내 친구 J는 누가 봐도 구김 없고 밝은 사람이다. 이십 대 초반, J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했었다. 아마 우리는 그 때, 대학가 어느 허름한 맥줏집에서 언제가 될지는 모를, 우리의 막연한 결혼과 임신,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제왕절개로 낳았어. 엄마가 나 낳을 때, 날짜랑 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데. 그래서 부모님은 가장 좋은 날과 시간을 정해서 나를 낳았데. 그래서 내 사주는 어딜 가서 봐도 좋데."


J의 말을 듣고 난 뒤로, 이상하게 그 이야기가 마음 한 켠에 오래 남았다.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이뤄가는 것처럼 보이던 J의 삶이, 어쩌면 ‘잘 맞춰진 시작’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생각이 그녀를 질투하거나 평가절하하려는 마음은 아니었다. 다만, 한 인간의 시작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삶에 꽤나 큰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을 뿐이다.




임신 32주를 넘어서자, ‘제왕절개’와 ‘자연분만’ 사이에서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물론 출산 방법은 결국 뱃속의 아기가 결정하는 것에 가깝고,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건강을 유지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선택제왕’이라는 선택지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나 역시 하나의 방향을 정해두어야 할 것 같았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장단점을 하나씩 따져보았다. 자연분만은 아이의 면역력과 산모의 회복 측면에서 장점이 있었다. 반면, 나의 엄마가 그랬듯,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통과, 진통을 겪은 뒤 결국 제왕절개로 이어지는 응급 상황,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후유증에 대한 불안이 단점으로 꼽혔다.


제왕절개(이 경우 선택제왕)는 날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 따라서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상황 속에서 출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회복이 상대적으로 더딜 수 있으며 개복 수술이라는 부담감과 아이의 초기 면역력 저하 가능성, 또한 수술 후 후유증에 대한 부분이 단점으로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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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쪽이 명확히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변했다.

"그건 여보가 결정하는게 맞는 것 같아. 내가 함부로 의견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 천천히 잘 생각해봐. 난 여보가 뭘 선택하든 좋아."


순간,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만약 그가 어떤 방향을 강하게 주장했다면, 나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대답은 어쩌면 가장 책임감 있는 방식의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나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예측 가능한 상황 속에서 준비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아픔은 잘 참는 편이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에는 자신이 없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그 시간을 지나가고 싶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오래 전 들었던 J의 이야기처럼, 할 수 있다면, 아이의 시작이 되는 날짜를 선택해주고 싶다는 마음. 아이의 시작을 부모가 함께 고민해서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믿음. 그게 실제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에 대해서는 절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이십 대 초반의 내가 느꼈던 감정을 되살려, '그 선택'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한 번쯤은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씩 마음을 들여다보니, 답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선택제왕’을 선택했다.


며칠 후 다시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나는 여보 선택이면 다 좋아.”


그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놓였다.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만나든, 그 모든 과정은 대단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다. 자연분만으로 긴 시간을 버텨낸 엄마도, 수술대 위에서 또 다른 용기를 낸 엄마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선택이 더 낫다거나, 다른 선택보다 옳다고 전혀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나에게 조금 더 맞는 방법을 골랐을 뿐이다.


하지만 선택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이건 너무 나를 위한 선택은 아닐까?'

'아이보다 내가 덜 힘들기 위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건 아닐까?' 하는 마음.


이 질문은 마음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고민했고, 더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래야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이 시간을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세워둔 이 작은 계획들이 너무 크게 어긋나지 않고 흘러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이라는 일이 언제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결정이 확실한 ‘선택’이라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 정도에 가깝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방식이든, 결국 우리는 만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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