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on Dec 30. 2020

소리 없는 아우성

<2021 서울예대 극작과 문제 및 답안>


코로나 19가 종식됐다는 반가운 뉴스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쇼윈도에 비친 내 얼굴엔 여전히 마스크가 씌어져 있다.
어떻게 된 걸까?


이 작문시험은 수험생의 상상력, 구성력, 표현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입니다.

창의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보세요.


1. 글의 제목을 반드시 제시할 것.

2. 인물의 내면 묘사에만 치중하지 말고 구체적인 상황 속 인물의 행동도 함께 서술할 것.


- 연필(샤프펜슬 포함) 사용금지

- 수정액, 수정테이프 사용 가능. 자유 첨삭 가능.




소리 없는 아우성


 나는 백화점 입구에서 줄을 선채로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코로나 종식을 알리는 뉴스에 이어 전국 백화점에서는 그동안 코로나로 방출하지 못한 면세물품과 재고들의 특가 세일을 시작한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함께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말을 하지 못한 채로 쇼윈도 속 마스크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지금은 9시 58분, 곧 백화점이 개점할 것이다. 한눈을 팔면 난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내가 봐 둔 제품은 프라다 호보백이었다. 매장의 위치는 이미 외워두었다. 내 앞뒤의 경쟁자를 살폈다. 다행히 앞쪽은 후줄근한 옷을 입은 50대 여성, 분명 8층의 스포츠웨어로 향할 것이다. 내 뒤쪽 필라테스 복장의 20대 여성이 걸렸다. 저 아이도 1층 프라다 매장으로 향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도 분명 나를 의식한 듯 콧방귀를 뀌며 아이폰으로 눈을 돌렸다. 미리 지갑 속에 신용카드를 꺼내 두었다. 이 날을 위해 그동안 할부를 얼마나 아껴왔던가. 내가 결제한 것이라고는 배달음식과 정신과 약이 전부였다. 말이 나오지 않는 건 중요치 않다. 결제는 손가락과 카드만으로 충분하다. 내 손은 입보다 빠를 것이다.


 5,4,3,2,1. 개점과 동시에 철문의 셔터가 올라갔고 수많은 인파가 좁은 입구로 달려들었다. 나는 내 앞의 50대 아줌마를 밀치고 70대 흰머리의 할머니를 제치고 필라테스녀와 달려 나갔다. 만만치 않은 기지배다. 하지만 이 백화점은 내 나와바리다. 내가 눈감고도 지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란 말이지. 에스컬레이트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나는 프라다 매장 옆으로 이어지는 비상구 계단을 알고 있다. 재빠르게 방향을 틀자, 필라테스녀가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제길.


 비상문을 열자 그곳에는 진정한 나의 경쟁자들이 보였다. 파우더리한 향수 냄새와 아침부터 산뜻하게 고데기로 말고 나온 머리. 하지만 어린 연령대들을 보아 다들 엄마 몰래 할부로 명품을 사러 나온 여자애들이 비상계단 위로 좀비  마냥 득실거렸다. 이번 시즌 잇템이기에 재고가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나는  주머니의 독한 향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앞에 뽀송한 세팅펌녀의 머리 위로 향수를 들이붓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봉이 죽었다. 짱구 머리 주제에 프라다 백을 들면 지가 뭐라도   알았나 보지? 나는   인파로 숨어들었고 세팅펌녀는 사색이  채로 팔을 허우적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바로  광경을 보고  말인 것인가. 자기 뒤에  있는 30 루이비통녀가 범인인  알았는지 둘은 머리를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지금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재빨리 그녀들을 밀치고 머리를 숙인 채 앞의 무리를 있는 힘껏 밀기 시작했다. 몸이 밀리다 보니 숨이 막히다는 듯 허우적거리는 무리가 보였다. 그러니 굶으면서 살을 빼니 그 모양이지. 나는 쉬는 동안 골프와 필라테스를 병행하며 근력을 관리해두었다. 다니던 헬스장 문이 닫자마자 일대일 피티를 결제했다. 이런 난세일수록 돈의 힘은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나는 내가 배운 복식호흡으로 코어에 힘을 주고 앞뒤로 밀어내는 힘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았다. 아무나 명품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어느덧 비상계단의 문 앞에 이르렀다. 나는 문을 열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다들 이 비상계단을 모르는 탓에 1층은 비교적 한산했다. 바로 프라다 매장으로 달려들어가 내가 봐 둔 제품을 집어 들었다. 이미 내 앞에는 제품을 받아 들고 거울 앞에 서 있는 여자들이 보였다. 나는 읍읍 거리며 손가락으로 이 제품, 옷을 가리키며, 검은색, 그리고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하나는 중고명품 매장에 웃돈을 얹어서 내놓을 예정이다. 직원들과 손님들은 모두 조용했지만 다들 재빠르게 움직였다. 조금 한숨을 돌리며 호보백을 걸친 앞 손님의 거울로 눈을 돌리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울 속 그녀의 어깨에는 프라다 백이 없는 것이다. 거울 앞의 손님과 직원은 모두 당황한 눈치였으나, 직원은 손님에게 계속 엄지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방을 사지 않을 수는 없다. 어차피 명품백은 나보라고 메는 것이 아니다. 잠시 동요했으나 나는 내 몫의 가방을 가져온 종업원에게 신용카드를 건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36개월 할부를 부탁했다.


 가방을 들고 승리의 미소를 지은 채 나는 물건을 구입한 명품관 손님들이 편하게 나가도록 마련된 쪽문으로 향했다. 이 가방을 이렇게 저렴하게 손에 쥐다니 코로나가 또 한 번 지구를 쓸고 갔으면 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아’ 소리를 내니, 웬일인지 목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이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사람들은 모두 여전히 입은 움직이나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니 재난문자가 여러 통 와있었다. 질병관리 본부에서 현 상황을 파악 중이니 국민들은 모두 당황하지 말고 현업에 충실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시간을 보니 점심을 먹고 필라테스 수업을 가면 딱 맞을 정오였다. 나는 쇼핑백을 당당히 팔에 걸고 우아하게 차도 갓길에서 손을 들어 외쳤다.


“택시”


 그러자 옆에서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와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쓸던 미화원 아저씨가 토끼눈이 된 채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아, 너무도 짜릿했다. 명품백을 들고나가면 보는 시샘의 눈길을 단지 목소리만으로도 받을 수 있다니. 택시가 멈춰 서고 나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목적지를 말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놀란 눈을 하고 돌아봤다. “아, 목소리요?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백화점에서 나오니까 목소리가 나오던데요? 아저씨도 퇴근하면서 백화점에 들려보세요.” 그리고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 오빠는 진료를 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전화를 거니 역시나 오빠도 목소리가 나왔다. “어~ 오빠 그럼 저녁에 내가 병원 앞으로 갈게~.”


그때였다. 라디오에서는 알 수 없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국민 여러분, 속보입니다. 갑작스러운 이상현상으로 납치 및 살해 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두 자택이나 직장에서 기거하시기를 권장합니다. 또한 거울 속에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로 비치는 인물들을 조심 ….”

 라디오 소리를 줄이는 택시기사 아저씨의 백미러로 그의 턱에는 마스크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조수석에서는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뒷좌석 문을 열었지만 열리지 않았고 그들은 보란 듯이 창문을 내린 채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질러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나가는 행인 중 누구도 112로 전화를 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둘은 서로 신난 표정으로 입모양으로 소통했다. 뻐금 뻐금.


‘눈. 알. 은. 얼. 마. 지?’




  Q.  입시 때 쓴 작품에서 가장 생각나는 문장


 내가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어서 기억이 나기도 했지만, 이 문장은 내 글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입시문제에서 내가 주목한 단어는 “쇼윈도”였다. 거울이나 창문도 아닌 상품을 진열하는 쇼윈도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것. 그래서 공간을 백화점으로 설정했다. 백화점은 사람보다 상품이 우선되고 진열되는 물질만능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 이어서다.


 자본주의는 부자와 빈자, 상품구매능력이 있는자와 없는자로 극명하게 나뉜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오직 상품 구매능력이 있는 자들만이 모이는 곳이며, 상품 구매능력이 없는 자들은 배제된 곳이다. 해당 공간에 익숙한 주인공은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삶을 이해할 의지도, 목격할 기회도 없다. 쇼윈도가 백화점이란 공간을 이끌어냈다면, ‘목소리를 낼 수 있다’와 ‘거울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역시 사람을 나누는 또 다른 특징이 된다.


내 글 에서는 백화점에서 상품을 구매한 이 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거울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거울에 비친 마스크’는 이 체제에서 분노할 필요가 없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 이들에게만 부여되는 특징으로 설정했다. 즉 이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으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녀가 올라탄 택시 운전사는 ‘거울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받는 사회적 차별과 체제에 대한 분노에 대해 실제 어떤 액션을 취하는 인물인 것이다.


라디오로 상징되는 언론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인물’들을 폭도나 범죄자로 여기며 주의하라는 뉴스가 나온다. 계급갈등인 시위나 혁명의 과정에는 늘 많은 피가 동반됐다. 부자에 대한 적개심을 비인륜적 방식으로 해소하는 범죄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작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의 특징은 ‘명품백’보다 명료하게 드러나는 ‘가진 자’라는 특징이다. 그래서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목소리를 내지 않는 자’들은 범죄의 타켓이 된다. 그녀는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순간에 이르러서 자신이 무관심했던 일반시민들이 자신을 도울 수 없는 환경 즉 “공동체의 붕괴”를 깨닫게 된다. 이를 잘 드러내기 위하여 ‘눈알이 얼마지’라는 대사를 골랐다.


 과거의 서구의 시민혁명의 주체가 되었던 부르주아라는 단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진 자로의 위치를 공고히 만 하려는 부자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사회의 혼돈이 가져다주는 부를 더 쉽게 점하기만 하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없는 부르주아는 단기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을지 몰라도 필연적으로 도래할 공동체의 몰락에서 자신도 안전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다.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 쇼윈도 “실재가 기호와 이미지의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또한, 주인공이 1층 명품샵으로 향하는 비상계단의 경쟁에서 자신보다 앞에 있는 여성을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은 헬스장이 문을 닫았을 때 1:1 필라테스를 통해 코어 근력을 단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드리야르는 육체는 모든 소비의 대상 중 가장 아름답고 멋진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투자된 육체는 자신의 고유한 지위를 갖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보다 앞에 있던 (굶어서 살을 뺀) 여성을 밀쳐내고 명품백을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투자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육체는 이후 다시 ‘통나무 장사’라는 소비 대상으로서의 육체가 된다. 인간의 가치가 자본의 논리로 평가되는 백화점에 있던 여성이 자신의 신체부위가 금액으로 매겨지게 됨을 보여주면 관객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여겼다.


 코로나는 한국사회가 방관한 문제들을 명료하게 가시화시켰다. 성소수자, 소상공인, 사이비 종교, 학생들과 같이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를 가진 집단들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지만, 신경 쓸 겨를 없이 소수자들이 코로나로 더 큰 피해를 겪었다. (이전 역사에서 흑사병과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이 부자는 더 부유하게 빈자는 더 가난하게 만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호오포노포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