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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Sep 24. 2024

엄마의 두통

미용사 엄마의 이야기

나는 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내 인생의 다음장이 어떻게 되건 내 인생은 한 가지 상황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내 삶은 어떤 일이 닥치건 발을 앞으로 내딛어 전진하려는 나의 의지에 결정되리라. 

(길위에서 하버드까지, 리즈 머리)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두통.


처음에는 파마약 냄새 때문인 줄 알았다. 몇 시간동안 파마약을 바르고 미용기구를 종이에 말아 고무줄로 묶는 이 일을 내내 서서 하는 게 힘들어서 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사람들이 힘들었다.


태생이 내성적인 그녀로서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힘들었다. 시장 여자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미용실에 오는 이유가 단지 머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은 날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늘 언제올 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고 아이들은 커가는데 손님이 안 오는 날은 불안함이 더 커져서 그랬다. 손이 빠르지 않아서 손님을 건너편 미용실에 뺏길 때도 그렇다. 그 손님을 그 쪽 미용실에 뺏기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도 마음이 상하는 건 사실이다. 아는 지인이 온다고 해도 그것도 만만치는 않은 일. 그래도 오면 다행이다. 지인이 오는 게 뜸하다 싶으면 말실수를 해서 그런가 더 염려가 된다.


엄마는 요새는 더 몸이 힘들어서, 두통이 더 심해져서 누워있는 일이 많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데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섭다. 마음이 두근거린다. 사람들이 이 미용실에서 하는 그 남의 뒷말들이 다른 곳에서는 내 욕을 할까봐 무섭다. 사람들의 입이, 그 입에 오르내릴 자신이 두렵다.

같이 욕을 해줘야 할 지 그러지 말라고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시간이 둥둥 떠올라간다. 계속 손은 손님의 머리 위를 움직이고 있지만 몸은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다. 미용실에서 서 있지만 계속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다.


다행히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오면 좀 괜찮다. 가게 안 팎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내는 녀석들 때문에 대화의 주제가 바뀐다. 그래도 생기있게 떠드는 녀석들이 있어서 다시 힘을 내본다.


엄마는 무를 사와 무를 나박나박하게 잘라 얇게 저민다. 하얀속살은 보인 무들은 굵은 바늘에 찔려 하얀 이불실에 엮어 집 안에 말린다. 이렇게 말리고 말린 무말랭이들은 엄마가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굴과 함께 무쳐 밥상에 내놓으면 겨우내 맛있는 반찬거리가 된다.


엄마는 또 흰콩을 사와 삶는다. 삶아놓은 흰 콩 껍질을 벗겨 꾸덕꾸덕해지게 치고 뭉쳐서 비닐 봉지에 넣고 전기장판에 둘둘말아 안방 한쪽 구석에 놓으면 며칠 상간 맛있는 청국장이 된다. 시장 끝 김치아저씨네 청국장은 새빨간 저민 고추와 큼직히 썰어 놓은 파가 들어가 예쁘게 뭉쳐 가게 앞에 진열하지만 엄마의 청국장은 볼품은 없다. 하지만 팍팍한 살림살이에 엄마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내는 것이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더 커 있는 아이들.

그래도 일을 할 수 있어서 힘을 내는 나날들.

그런 나날들이 엄마의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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