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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Sep 22. 2024

시장의 법칙

싸우지만 공존하는 곳

사는 게 그런 것이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내 마음을 전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소통해가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 그런 자잘한 일상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


(배려, 한상복)





어린 시절부터 시장에서 살았던 지희는 누군가가 싸우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가족 내에서도 싸우고, 동네에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종종 있고 동네 애들도 싸우기도 했다.

시장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장 안에서도 흥정을 하면서 손님과 시장 아줌마 사이에도 다툼이 있다. 상인들끼리도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많은 싸움을 보았지만 지희가 지희 동네를 위험 지대로 보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시장이라는 공간은 오픈되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리라.


시장에서는 아무리 싸워도 오래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옆 가게 사장님끼리 싸워도 서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로 눈을 피할 수가 없다. 고개를 돌리면 마주쳐야 하고 말을 걸어야만 한다. 싸우면 서로의 존재가 늘 아쉬울 때가 많이 생긴다. 급하게 가게를 비워야 할 때 서로가 서로의 가게를 봐주기도 하고 아프면 걱정해주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지희네 부모님도 싸운다. 시장 사람들이 싸우는 거에 비하면 옆집 아저씨들에 비하면 많이 싸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싸우기는 해도 동네 사람들처럼 욕을 많이 하고 싸우지는 않아서일 수 있다.


가끔 싸우는 건 술 때문이다. 지희 아빠는 기원을 좋아한다. 바둑을 두고 오래 앉아 있다가 오면 엄마는 화가 나 있다. 늦은 시간 미용실 문을 잠그고 있다가 아빠가 들어올 때 지희 엄마는 지희에게 “아빠 문 열어주지마”한다.  그래도 지희는 아빠가 안쓰러워서 열어준다. 문을 열면 훅 코속으로 아빠 몸에서 나오는 술 냄새가 난다.

아빠는 술을 잘 못 마시는데도 기원 사람들이랑 술을 마시고 오는 날이면 많이 마신다. 바둑에 져서 마시고 이겨서 기분 좋아마시고. 언제 한 번은 지희가 TV에서 바둑 중계를 하길래 아빠한테 바둑 좀 가르쳐달라고 했는데 ”예끼, 여자는 바둑같은 거 하는 거 아니야.“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아무튼 무슨 재미로 하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그 바둑을 두느라고 회사 끝나고 늦게 기원에 가서 술까지 마시고 오는 것 자체가 엄마한테는 짜증나는 일일수도 있다.

지희가 아주 어릴적 일곱살 때는 엄마아빠가 자주 싸운 적이 있었다. 지희 아빠는 먼 친척이 이민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지희는 밤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것을 들었다. 아빠는 미국을 가겠다. 엄마는 무슨 자신감으로  미국에 가느냐. 영어도 못하면서 무슨 이민이야 라고 랬다.


지희는 미국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에서는 미국이 좋은 곳 같은데, 엄마는 무섭기만 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희 아빠가 영어를 할 줄 안다거나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도 아니다. 아빠는 한국이 싫은 거 였다.

“여기서 힘들게 시장 사는 것보다 백 배 낫지.”

“아니 애 셋을 데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데를 어떻게 가.”

“ 윤석이네 있잖아. 걔네랑 같이 서로 의지하며 사는 거지.”

“자기나 가. 나는 못 가.”

싸우는 밤마다 엄마는 지희를 붙들고 물어본다.

“너는 누구랑 살거니. 너는 다 컸으니까 아빠랑 살아라. 동생들은 사리분별을 못하니까. 엄마가 키우고. 너는 아빠랑 둘이 살아도 될거야. ”

지희는 밤마다 기도한다. ‘제발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 ’

지희는 밤마다 자신을 원망한다. ‘왜 나는 일곱살이나 되었나. 더 늦게 태어나지 못했나. 그랬으면 엄마가 아빠랑 살라고 하지는 않을텐데.’


하나님은 어린 지희의 기도를 들으셨을까.


지희아빠는 먼 친척 아저씨가 이민 가는 것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민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것 같다. 지희가 생각할 때는 아빠도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부끄러움도 많고 말도 잘 못하는 아빠가  이억만리 저 먼 미국을 간다는 것은 지희로서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어릴 적도 그렇고 커서도 그렇고 엄마 아빠가 작게든 크게 싸우고 나도 엄마는 아빠 먹을 아침밥을 꼭 차린다. 지희 같으면 삐져서 절대 밥 같은 건 먹으라고 안 할 것 같은데 꼭 밥을 차리고는 지희나 윤희한테 말을 전하라고 시킨다.

“아빠한테 식사하시라고 그래.”


지희는 안다. 사람은 서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싸움이 오래 가기도 전에 서로 풀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가족도 이웃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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