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이야기
약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을 본다 해도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으며
내 안에 숨겨진 큰 비밀을 발견하고
그 소중한 꿈 안에 내 삶을 이루며
삶에 지친 사람들 찾아와 쉬어 가도록
우리 맘 속에 누군가의 자리 남겨두며 살아요.
(한웅재, 노래 '하연이에게')
지희네 가족은 용유도로 휴가를 갔다.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용유도로 가면 배에 차도 타고 사람도 탄다.
배에 사람이 아니라 차도 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희네는 차가 없지만 차에 탄 상태로 배를 타면 신날 것 같았다. 1시간 안 되게 배를 타고 내리면 부두에서 기다렸던 사람들이 연안부두로 가는 배를 탄다. 용유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다. 배를 타고 가면 갈매기들이 따라오는데 새우깡을 던지면 갈매기들이 낚아채서 먹는 모습이 신기했다.
용유도에 내려서 게를 잡는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은 꽃게가 아니라 작은 돌틈을 뒤집으면 그 돌 밑에 얼마나 많이 숨어있는지 이곳 저곳에서 게들이 튀어 나온다. 작은 게를 잡으려고 하다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은 돌에 발이 생채기가 난다. 너무 발이 아프고 쓰라린대도 꼬물 꼬물 이리 저리 나오는 바다 생물 잡느라 여념이 없다.
아빠는 서해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해 정도는 가야 물이 파랗지. 인천 앞바다야 뭐
물 들어올 때 나갈 때 길지, 갯벌 넓지. 서해바다 뭐 볼 거 있어?”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늘 영종도를 용유도를 배 타고 데리고 온다.
그러고보니 아빠는 송도유원지 물은 더러워서 안 간다는 둥하면서 지희와 동생들을 데리고 방학마다 간다. 한국 영화는 재미없다면서 외국 영화만 본다. 아빠는 우리나라 것은 별로라고 한다. 그런데 올림픽을 보거나 축구 경기를 할 때는 목이 터져라 우리 나라를 응원한다. 아빠는 늘 반대로 말한다.
그런데 말이 신기한 게 누군가가 별로라고 하면 갑자기 좋다가도 싫어진다. 그게 바로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아빠가 서해바다는 좋지않다는 말이 지희 맘에 콕 들어와서 아까까지만 해도 신나게 놀던 지희도 갯벌이 별로라고 생각된다. 재미가 없다.
아빠는 용유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바다위 하늘을 본다.
그가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가 여섯 살, 그가 아끼던 고무신을 피난길에서 잃어버리고 나서도 혼이 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건 도망갈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누나들 손을 잡고 아버지를 따라 그 먼 길을 걷고 걸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도망왔을 때 모두들 미국이 도와줘서 전쟁에 이길 거라고 했다.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전쟁이 길었고 결국 전쟁은 그 누구도 이기지도 지지도 못했다. 3년의 긴 교전 끝에 어른들은 휴전이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이라고 했지만 어린 아이였던 그에게는 무섭고 지긋지긋한 전쟁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던 순간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사는 것이 힘들었던 그. 이리 치이고 저리 치리면서 그가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부산 시장통에서 배운 것은 살아남는 법이었다. 눈에 띄이지 않으면서도 살아남는 법, 어깨너머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아빠가 지희와 동생들이 갯벌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의 아이들. 내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다. 아빠가 있다. 내 아이들은 고아같이 살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늘 바람같이 세상에 떠나니는 것 같던 그가 세상에 뿌리내리고 사는 이유. 살 이유를 늘 찾아헤매던 그가 인천에서 살아가는 이유. 아내와 아이들.
지희도 자신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아빠를 바라본다. 고아처럼 자란 아빠라서 감정 표현이 서툴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지희는 아빠가 아빠의 엄마없이 자랐다는 게 안쓰럽다.
늘 자기 마음과 반대로 말하는 아빠.
아빠에게 살며시 지희가 다가간다.투박하고 거친 아빠의 손을 본다. 수줍은 지희는 부끄러움이 더 많은 아빠의 손을 차마 잡지는 못한다. 아빠랑 같이 바다를 바라본다. 그저 수줍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