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를 얻어 오는 공간
“목욕탕은 어린 시절 나에게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백희나, 그림책 ‘장수탕 선녀님’ 인터뷰)
인천 간석동과 관교동을 잇는 큰 도로는 동양장사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인고사거리라고도 불리는 이 거리는 목욕탕과 관련된 지명이다. 100여년이 다 된 고등학교보다도 동양장사거리로 더 많이 불리고, 부평에도 백마장사거리가 있는 걸 보면 목욕탕은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곳.
시장 사람들에게도 목욕탕은 삶의 얼룩을 지우는 중요한 한 장소이다. 동네 목욕탕은 사람이 진짜 많다. 특히 시장 골목에서 벗어나 큰 길, 이선생님 소아과를 끼고 돌면 큰 목욕탕이 나온다.
온동네 엄마들이 아이들을 다 데리고 오는 일요일.
지희엄마는 교회에 다녀와서 집에 있는 바구니에 샴푸, 린스, 비누, 때밀이 타월, 수건 등을 다 들고 아이 들 손을 잡고 목욕탕을 간다.
일요일엔 너나 할 것 없이 오다보니 목욕탕에 발 디딜 틈이 없다. 누가 하나 일어나면 잽싸게 틈을 만들어 엄마들은 제 아이를 앉혀놓고 자기 자리들이 생길 때까지 이 구석 저 구석 아이등을 밀고 민다.
할머니들의 쭈글쭈글해진 몸,
엄마들의 하얀 몸들,
아이들의 몸들이
그 자리에 어김없이 앉아 목욕을 한다.
아줌마들은 (주로 눈썹에 짙은 문신을 한 )
목욕탕 매점에서 우유를 사서 들어온다. 우유를 때수건에 묻혀서 몸을 닦기도 하고 몸에 부어 목욕을 한다. 우유를 몸에 묻히면 비린내가 날 것 같지만 목욕탕에서 진동하는 샴푸 냄새들 덕분에 비릿한 냄새들을 나지 않는다.
아줌마들이 우유를 먹지 않고 얼굴이나 온 몸에 붓냐고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줌마들이 예뻐보이기 위해서 한다는 엄마의 대답에도 지희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잔뜩 우유를 붓고 난 아줌마들의 얼굴은 우유를 잔뜩 부어도 어린 지희 눈에는 비슷해보여서였다.
엄마가 가장 생기있을 때는 목욕탕에서다.
아이 셋을 씻기고
자신의 몸을 씻어내는 엄마가
가장 생기있어 보인다.
자기 몸을 닦고 나서
자신의 등을 내미는 엄마의 등
엄마의 등을 깨끗이 닦는 일은 생각외로 어렵다.
“ 좀 더 구석구석 닦아봐”
“ 이 쪽, 아니 저 쪽. 응 그래그래.
그리고 아래쪽.”
다 씻고 나서 엄마가 사우나로 들어간 사이
지희와 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곳는 목욕탕 구석
샤워기가 없이 놀 수 있는 곳.
미끄러운 비눗물로 스케이트 놀이를 한다. 한 번도 스케이트장에 가본 일이 없는 지희와 동생들은 거기서 실컷 놀다가 엄마를 기다린다. 드디어 엄마가 목욕이 끝나고 나와서 다같이 옷을 입는다.
한참 목욕하고 나서 옷을 입으면 옷이 까끌까끌하게 느껴지지만 또 다르게 새로운 마음이 든다.
목욕탕 안 냉장고는 시원한 음료수들이 많다. 지희네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료는 두유.
동네 슈퍼에서는 팔지 않는 대학이름이 붙은 두유는 목욕탕에서만 먹는 특별한 맛이었다.
두유를 마시며 목욕탕 옆
뻥튀기 아저씨 가게에서 쌀튀밥과 강냉이를
잔뜩 사가지고 집으로 가는 길은
그 어떤 일상보다 신나는 일.
지희가 엄마와 동생과 상쾌하게 걷는 목욕 끝난 저녁은 언제나 한가로운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