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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Sep 10. 2024

지희의 인생

지희의 소소한 고단함

“인간은 곧 그의 스토리다”

(조셉 골드, ‘비블리오 테라피’ 중)





친구들은 지희네 집이 미용실을 한다고 하면 대개는 부러워한다. 너희집 미용실 한다며 나좀 데려가 달라며 귀찮게 하는 친구들도 있고 엄마가 미용사라서 하고 싶은 머리를 다 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대책없이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몰라서 하는 얘기.


지희네 집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건 머리카락이다. 개구쟁이 두 동생은 신발을 안 신고 돌아다니다가 가게방으로 들어와서 온 집안을 머리카락 천지로 만들 때가 있다. 머리카락이 제일 싫을 때는 반찬이나 국에서 나올 때.


커트하는 손님이 많은 날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워야 한다. 바쁜 엄마를 위해서 이 정도 쯤 할 때도 있지만 지희도 어떤 날은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그래도 고학년이 되어서 엄마가 시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방학이 되면 지희는 조금 더 바빠진다. 파마 손님이 많은 날에는 파마약이 묻은 머리 커버나 고무줄, 파마 종이, 파마 기구를 씻어 놔야하기 때문이다. 파마 손님이 한 명이라도 있는 날엔 줄줄이 있기 때문이다.


파마한 시장 아줌마가 파마 기구를 끼고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오면 옆 집 아줌마도 왠일인지 파마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나보다. 꼭이지 파마 하고난 아줌마네 그 옆집 아줌마가 온다. 커트 손님이 많은 날은 바닥도 쓸어야 하고, 수건이 떨어지면 수건을 세탁기에 돌리고 마른 수건은 잘 개켜서 넣어두어야 한다.

 

고달픈 현실은 또 있다. 친구들은 가끔씩 지희를 보면서 의아해한다. 지희는 언제나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미용실 하랴 애들 세명 키우랴, 엄마가 지희의 긴 머리를 매번 묶어주기에는 엄마는 너무 바쁘다. 학교에서 긴 머리를 찰랑 거리는 수진이는 볼 때나 예쁘게 두 쪽으로 머리를 따고 온 지숙이를 볼 때 배가 아프기도 하지만 힘든 엄마를 생각하면 꾹 참아야 하는 것.

 

하지만 좋은 것도 있다. 미용실에는 잡지가 많이 있어야 한다. 파마하는 아줌마들이나 손님이 많을 때는 아줌마들은 잡지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폐품 수집이라도 하는 날엔 지희가 일등이다. 잡지는 다른 친구들이 가져오는 신문을 다 합쳐봐도 몇 권이면 그 어느 친구들도 다 이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줄넘기를 제외하면 지희가 학교에서 일등을 하는 건 폐품 수집이기 때문에 지희는 엄마가 미용실을 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또 좋은 건 소파가 있다는 것이다. 지희네 가게방은 작아서 소파를 놓을 수 없지만 미용실 안에는 소파가 있다. 그 얘기인 즉슨 소파 위에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침대가 없는 지희네에게 유일하게 뛸 수 있는 공간은 소파다. 하지만 엄마가 없을 때만이다. 엄마가 보시는 날엔 얼른 내려오지 못해 호통을 치시기 때문이다. 옛날 철없을 적에는 지희도 동생들 못지 않게 했지만 소파 값이 얼마나 비싼지 엄마랑 저번에 새로 소파를 사러갔다가 가격을 보고 너무 놀라서 이제는 뛰어다니지 않기로 했다. 단, 엄마를 도울 때 신발로 갈아신기 귀찮을 때만 가끔씩.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지희만의 어려움. 어른이든 아이이든 그 누구나처럼 지희의 인생에도 소소한 고단함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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