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소설을 쓰는 이유(4)
아주 오래 전 내가 중학생으로 기억되던 어느 날
엄마는 가계부를 쓰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고 엄마는 부엌으로 가서 집안일을 시작했는데 엄마가 쓰던 가계부를 보다가 문득 엄마가 일기를 쓴 것을 보았다.
엄마가 가계부 옆에 자신의 걱정이나 세 남매 우리의 이름을 쓰며 몇 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하던 가게가 가장 힘들때였는데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가계부 한 쪽에 적어내려갔던 것 같다.
그 몇 줄이 좋았다. 엄마가 쓴 글이라는 것.
엄마의 손길이 담긴 글씨라는 것.
그 전부터도 엄마의 글씨가 마음에 들어서 엄마의 글씨를 따라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글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엄마를 좋아하던 어린 나의 마음 만큼
엄마의 글씨가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글을 쓴 것은 그 때 단편적인 것이었고
대부분 엄마는 기능적인 글을 쓰고 있었다.
엄마는 주로 교회에서 일이 있어서 성경말씀을 어딘가에 적거나, 나의 가정 통신문에 전달내용이나 당신의 이름을 쓰는 일 정도가 많았다.
아주 어릴 적 담임선생님에게 엄마가 적어낸 글귀
‘저희 아이를 잘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이 글귀가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엄마의 생각을, 글로 알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계부에 몇 줄 썼던 몇 번을 빼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쓴 걸 본 적은 없다.
나와 내 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취향 같은 걸 간간히 말한 적은 있지만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최근에 알게 된 수잔 티베르기앵이란 작가
나이 50이 되면서 작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프랑스인과 결혼하여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자신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다가 문득 영어를 쓰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싶다는 막연한 갈망에서 시작했다는 작가의 그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읽었다.
엄마로서의 나와 여성으로서의 나의 그 균형점을 찾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더 나이가 든 여성으로 살아가는 나를 위해 마음을 다스리고 감정을 추스르고 건강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언젠가, 나의 딸이 지금의 나의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인 나의 생각이 문득 궁금해질 때 엄마는 그 때 그랬어라고 이 글을 보여주고 싶어서 글을 쓴다.
우리는 어리든 나이가 들던 아름다움과 삶,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관계들 사이에서의 균형을 잘 찾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것 같다.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며
노년의 삶이 녹록치 않음을 느낀다.
엄마가 걸어가고 있는 그 노년의 삶을 옆에서 관찰자로 지켜보며 격려하며 딸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 여기 내 집 앞 찻집에 앉아 엄마와의 어제의 대화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