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선미 Nov 23. 2018

위로와 용기를 주는 시

이안, <모두들 처음엔>

모두들 처음엔

이안



대추나무도 처음엔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꽃도 시원찮고 열매도 볼 게 없었다.


암탉도 처음엔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횃대에도 못 오르고 알도 작게만 낳았다.


모두들 처음엔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조금씩 시원찮고 조금씩 서투르지만


어느새 대추나무는 내 키보다 키가 작고

암탉은 일곱 식구 거느린 힘 센 어미닭이 되었다.


《고양이와 통한 날》 (문학동네 2008)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위로가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위로는 가능할까요. 사실 처음 이 동시집을 읽었을 때엔, 이 시는 잘 보이지 않았어요. 후에 장에 나가 사다 심은 어린 목련나무가 이듬해에 더 많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것을 제 눈으로 보고서야 이 시는 비로소 제게 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시가 씨앗처럼 심겨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듬해, 그 이듬해, 세 송이 어린 목련꽃에서 시작한 목련나무의 성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거고, 목련나무의 증거와 함께 이 시가 내 안에서 위로의 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처음엔>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위로와 용기와 믿음을 주며 자라는 시입니다. 세 송이로 시작한 목련나무가 이듬해 열세 송이, 이듬해엔 서른 송이, 지금은 수없이 많은 목련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저는 보고 있으니까요. 굳이 목련나무를 심지 않았어도 <모두들 처음엔>은 읽는 이의 마음에 씨앗으로 심겨져 싹내고 자라 단단한 위로와 용기와 믿음의 시로 남을 것입니다. 모두에게 시간은 흐를 것이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는 클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그 증거를 보게 될 테니까요. ‘성장'이라는 단어 속엔 언제나 ‘시작’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잘못 배달된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