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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미 Nov 23. 2018

새의 변신

이안, <새>

이안



충주시립도서관 옆 잔디밭 구석진 자리에 새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가 앉아 있다

날개를 아주 부드럽게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이

깃을 다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 먼 곳으로 날아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검은빛이 감도는 그

새 곁으로

나는 조용조용 다가갔다

눈치를 챘는가 새가 날개를 접는다

나는 조금 더 몸을 낮춘다

새는 움직일 생각조차 않는다

나는 한 발 또 한 발

가까이 간다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아뿔싸! 커다란 검정색 새는

순식간에 검정 비닐봉지로 변신해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간 걸 후회하며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검정 비닐봉지가 다시 새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변신은 하루에 한 번밖에 못 하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 그 자리에 다시 가 보고서야

나는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검정 비닐봉지는 새가 되어서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던 것이다


⟪고양이의 탄생⟫(문학동네 2012)



이안의 두 번째 동시집《고양이의 탄생》에는 첫번째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을 잇는 시(주로 2부의 시들), 세번째 동시집《글자 동물원》의 전조가 느껴지는 시(많은 3, 4부의 시들),  그리고 이 시집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시들(1부의 뱀 연작과 <숨바꼭질>, <금붕어>, <새>, 5부의 시들)을 골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새>는 《고양이와 통한 날》의 바로 그 <비닐 새>입니다. 그러나 장소를 명자네 고추밭에서 시립도서관 옆 구석진 자리로 옮기자 새는 비닐 봉지로 변신을 합니다. 길거리를 떠도는 검은 비닐봉지를 검은 새로 착각하는 것은 일상의 일입니다. 그러나 검정 비닐봉지가 다시 새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시인의 일입니다. 다음 날, 그 자리에 다시 가 보고서 끝내 검정 비닐봉지를 새로 만들어 판타지의 공간으로 날려 보낸 것은 시인 이안이 한 일이었습다. 읽을수록 좋아지고 검정 하양 비닐봉지를 볼 때면 생각나는 시입니다. 이안 시인처럼 낯선 그곳에 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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