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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미 Nov 23. 2018

죽음을 다룬 두 편 시

가네코 미스즈, <눈> + 백석, <쓸쓸한 길>

가네코 미스즈



아무도 모르는 들녘 끝에서

파란 작은 새가 죽었습니다.

ᅠ ᅠ 춥디추운 해 저물녘에


그 주검 묻어주려고

하늘은 흰 눈을 뿌렸습니다.

ᅠ ᅠ 깊이깊이 소리도 없이


사람들은 모르는 외딴 마을에

집도 함께 서 있습니다

ᅠ ᅠ 하얗고 하얀 장옷을 입고


이윽고 어슴푸레 밝아오는 아침

하늘은 빼어나게 맑았습니다.

ᅠ ᅠ 파랗게 파랗게 아름답게


조그맣고 어여쁜 영혼

하느님 나라 가는 길

ᅠ ᅠ 넓고 넓게 열기 위해서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서승주 역, 소화 2006)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는 가네코 미스즈의 선집입니다. 선집임에도 <풍어>, <물고기>, <나무>, <고치와 무덤>, <개>, <자운영 밭>, <꿈과 생시>, <장례식날> 그리고 이 작품 <눈>까지, (죽음을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참새의 어머니>와 <햇살>까지 포함한다면) '죽음'을 다룬 시가 1/5을 차지합니다. <눈>은 백석의 <쓸쓸한 길>을 생각나게 하는 시입니다.ᅠ



쓸쓸한 길

백석


거적장사 하나 산 뒷녚 비탈을 오른다

아- 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산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러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뚜물 같이 흐린 날 동풍이 설렌다


⟪정본 백석 전집⟫ (고형진 엮, 문학동네 2007)



두 시 모두 존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대상의 죽음을 가네코는ᅠ"춥디추운 해 저물녘"이라는 말과ᅠ"그 주검 묻어주려고".ᅠ"깊이깊이 소리도 없이"라는 말로 애도하고, 백석은ᅠ"쓸쓸한 쓸쓸한 길이다"라는 말로써 애도합니다. 그리고 두 시인은 생으로부터 영원히 떠나는 존재를 위해 조문처를 차립니다. 백석은 산앵두와 머루로 상을 차리고('이스라치'는 산앵두이고 '전'은 장사 지내기 전에 영좌 앞에 간단하게 술이나 과일 등을 차려 놓는 것입니다.) 수리취와 땅버들 상주를 세워 문상객을 받습니다. 가네코의 상주는 "하얗고 하얀 장옷"을 입은 눈 덮인 집들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밤을 새운 뒤, 다음 날 장지로 함께 가, 함께 존재를 보낸다. 영결을 합니다. “타자를 안다고 말하지 않고, 타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고, 타자와의 만남을 섣불리 도모하지 않는 시가 그렇지 않은 시보다 아름다움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다.”(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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