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기의 전원을 켠다는 것

그 안에는 나의 여가(余暇)가 숨 쉬고 있다

by 가람

즐거운 나의 여가 생활


나의 여가 일대기의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이 네이버 웹툰의 존재를 알려준 뒤로 나의 모든 여가 생활은 모니터 앞에서 이뤄졌다. 학원 가기 전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마음의 소리>를 읽었던 것도, 초등학생 용돈 물가로는 고가였던 채색 마카를 구입해 <낢이사는이야기>를 허접한 솜씨로 따라 그렸던 것도 생생히 기억난다.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복을 입기 시작했을 무렵엔 아이돌 덕질에 빠져 살았었다. 방과 후 집으로 와 몇 시간이고 팬카페에서 조각 영상을 탐구하고 밤에는 므훗한 글들을 읽으며 그렇게 성에 눈을 떴다. 성인이 된 이후 일본 교토에서 나 홀로 라이프를 시작한 뒤로는 형형색색 추억으로 사진첩 물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울에 빠져 힘들었을 때는 현이씨의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을 보며 대낮부터 맥주를 까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도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가장 즐거운 건 여전했다.






즐거운 나의 디지털 생활

딴짓의 역사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꽤 많은 시간을 쏟아부으며 살아왔다. 망상을 하고 낙서를 하고 편집증 환자처럼 MP3를 정리하고, 또 블로그를 탐방하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님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그리고 인생의 꽤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의 대부분은 디지털 기기와 함께였다.


나를 달래주었던 추억의 감성 어플 '이팅'


내 손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디지털 기기에는 쓸데없는 것들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바탕화면에 마중 나와있는 어플을 보면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사진첩에는 부끄러운 나의 취향이, 메모장과 가계부에는 치열했던 일상의 흔적이, 음악 앱에는 즐겨 듣던 노래들이 가나다 순으로 줄지어 서있다. 사진첩의 마지막 사진을 볼 때면 봉인되었던 기억이 눈앞에 플래시백처럼 펼쳐지는데, 덕분에 전원을 켜기 두려운 기기도 있다.






옛 기기에 나노 단위로 숨 쉬고 있는 딴짓의 역사는 신기하게도 현재의 나에게 많은 힘을 주고 있다. 추억을 갉아먹고 사는 게 인간 아니던가. 나도 그런 보편적 인간의 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을 겪고 있는 걸지 모르겠다. 생활형 웹툰 애독자였던 나는 지금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소재로 팔아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하도 많은 글을 읽어서 그런지 그 속아 녹아 있는 스토리텔링 구조는 ppt를 만들 때나 일을 할 때 많은 영감을 주곤 한다. 특정 작품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접했던 것들 덕분에 한 줄이라고 더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쓸데없는 것들은 일상에 감칠맛을 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모르고 재미없는 삶을 살았다면 글을 쓸 수도, 아이디어를 착즙 당하는 일을 할 수도, 의외로 똘끼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도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어린 시절 나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준 쓸데없는 일들이. 그리고 그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나의 옛 기기들이.






응답하라 2020


불과 두 달 전, 앞으로도 읽고 보고 느끼는 사람이 되겠노라 사람들 앞에서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브런치 소개 문구에도 쓰인 '읽고 보고 느끼는'이라는 카피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나의 쓸데없는 여가 생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피로가 나를 집어삼켜 책도 영화도 웹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빅데이터도 어딘가 낡고 손상되어 정말로 쓸데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앞으로도 읽고 보고 느끼겠다는 다짐은 변함이 없다


그 많던 데이터는 누가 다 가져갔는지 머릿속에 남은 거라곤 출근과 퇴근 그리고 인생 고민뿐이다. 느긋하게 책상 앞에 앉아 딴짓의 역사를 써 내려갈 여유가 없다. 디지털 노마드인 척 버스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낑겨 인사이트를 얻거나 글감을 생각하거나 생필품을 최저가로 구매하거나 하지만 그야말로 '시간을 쪼개서'하는 행위인 만큼 딴짓에 시간을 들이던 옛날과는 달리 흥미도, 퀄리티도 떨어진다. 그리고 재미있기보다는 쉬이 지친다.


옛날보다는 쓸데없는 일에 미친 듯이 빠져 살 시간도, 지구력도 없지만 오늘의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딴짓에 한눈파는 중이다. 십여 년 뒤에도 분명 갉아먹을 감성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글을 쓰든지 말든지 창작을 하든지 말든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내 손에 주어질 것이다.


훗날 지금 쓰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다시 켰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먼저 '나 참 수고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다섯 편이상의 영화를 보고 두 편이상의 글을 쓰고 주말마다 좋은 사람과 좋은 것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던 나를 안아주고 싶을 것 같다. 지금 쓰는 글들이 어떻게 다가올지, 오늘의 딴짓이 십 년 뒤에 또 어떤 새로운 바람을 가져다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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