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2019)
Dear. 나를 위로해줄 추억의 한 페이지가 필요한 이들에게
누구나 힘들 때면 따스했던 옛 기억을 소환합니다. 저도 가끔 어릴 적 추억이 깃들 물건들을 뒤적이곤 합니다. 혹시라도 그 안에 현재를 바꿀 열쇠가 있지는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어봅니다. 저를 추억의 한 페이지로 보내주는 타임머신은 모양도 색도 무게도 다 다릅니다. 옛날 옛적 좋아했던 소설, 손때 묻은 노트, 빛바랜 사진첩, 몇 년 동안 전원을 켜지 않은 핸드폰 등... 그 물건들은 마법이라도 부리는 듯 부지불식간에 추억을 불러일으켜줍니다.
가만히 옛 추억을 더듬어 보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내 머릿속 얼굴과 풍경은 젊고 활기차지만, 돌아갈 수 없기에 동시에 보고 싶은 감정에 사무치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지금과는 사뭇 달라도, 지금은 볼 수 없어도 옛 기억은 우리에게 앞으로 걸어갈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옛 시간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 영원히 숨 쉬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의 동반자가 되어줍니다. 오늘은 추억을 닮은 영화 <작은 아씨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영화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2019)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영화는 제일 먼저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라는 원작자의 말로 관객들에게 인사합니다.
이후에는 여타 리메이크 작과 달리 조의 플래시백과 현실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되죠. 사건은 시간 순대로 흘러가지 않고 따뜻했던 옛날과 차가운 현재가 교차되며 일어납니다. 그리고 오렌지와 블루톤의 대비가 널뛰는 시간의 파편을 구분 지어줍니다.
회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색조 차이가 보여주듯이 현실은 차갑고 힘들기만 합니다. 동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서 건강했던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사랑에 좌절할 때 한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던 때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어쩌면 조는 즐거웠던 과거를 추억하며 그 따스함으로 조금이나마 현실을 물들이려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즐겁고 따뜻했던 옛 기억은 오늘을 살아갈 큰 힘이 되어주니까요.
제가 영화를 보고 내린 결론은 '2019년 <작은 아씨들>은 원작이 지닌 추억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 아니었을까'입니다. 추억의 힘은 개인의 차원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으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 예시가 고전입니다. 어떤 예술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고유의 따뜻함과 교훈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죠.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 <작은 아씨들>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요? 한 시대를 잠시 살아간 그들의 모습을 담은 소박한 이야기지만 네 자매가 꿈과 사랑에 고민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줍니다. 감독은 끊임없이 회상하고 과거로부터 얻은 따스함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얻는 주인공의 모습을 빌려 작품 자체가 지닌 추억의 힘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왜 영화가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는 말로 시작되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레타 거윅의 색깔을 입은 <작은 아씨들>
여성과 독립을 키워드로 작품 활동을 펼쳐온 그레타 거윅 감독의 손을 거친 2019년의 <작은 아씨들>은 네 자매의 꿈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배우를 꿈꾸는 메그, 작가를 꿈꾸는 조, 음악가를 꿈꾸는 베스, 그리고 화가를 꿈꾸는 에이미까지.
기존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입체적인 인물 묘사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담아내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긴 시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작품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해석한 신선한 작품이었기에 리메이크로서의 가치가 한 층 올라갑니다.
문득 조 역할을 맡은 시얼샤 로넌의 또 다른 출연작 <브루클린> (존 크로울리, 2015)이 떠오릅니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 온갖 일들을 겪고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에일리스'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인데요, 엔딩 장면 기억하시나요? 처음 미국에 입국할 때 어떤 여성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는 에일리스가 다른 이민자에게 도움을 줍니다. <브루클린>은 그렇게 에일리스의 이야기로 끝맺음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바통 터치하며 그들의 성장기는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아무 이유 없이 <브루클린>의 엔딩이 떠오른 것은 아닙니다. <작은 아씨들>도 네 자매의 이야기로 끝맺음하지 않고 또 다른 작은 아씨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은 저 꼬마들의 모습이 마치 가(家) 네 자매의 옛 모습인지, 아니면 다른 작은 아씨들의 모습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굳이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넣었다는 것은, 이 작품이 비단 네 자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증거입니다. 수 없이 회자되는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도, 그리고 작품을 입체적으로 해석한 것도 모두 같은 뜻에서 비롯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작은 아씨들의 이야기로 오늘날의 작은 아씨들에게 좋은 울림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요? 좋은 작품이 계속해서 회자되듯이 작은 아씨들의 성장기도 작품 밖에서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돌이켜볼수록 힘이 되는, 따뜻한 추억의 힘을 닮은 작품을 만나 참 다행입니다.
서로 다른 개성과 꿈을 지닌 작은 아씨들의 얼굴에서 제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꿈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본인은 모를 수 있지만 주위 사람들은 분명 느끼고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힘들게 느껴지는 일들도 언젠가는 따뜻한 오렌지색 추억으로 변해 우리를 위로해줄 것입니다. 너무 힘들다면 잊어도 좋지만 우리 모두 조금 더 열정적으로 지금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From. 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