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감> (미키 코이치로, 2016)
To. 나를 반기는 온기가 그리운 이들에게
스물셋이 되던 겨울. 일본 교토에서 홀로 산지도 어언 사 년. 꿈꿨던 화려한 독립 라이프는 흐려지고 어느새 방 안에는 적막만 남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은 채 마지막 전공 시험을 치르고 왔지만 저를 반겨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냉장고에서 집 앞 마트에서 사 온 음식들을 꺼내 맥주와 함께 삼키며 저를 위로하던 날 만난 영화가 <식물도감>입니다.
이 영화에는 그때 저에게 없었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왔어?'라는 따스한 인사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성과 시간이 가득 녹아든 음식이었습니다. 전기담요 속에 쭈그리고 앉아 냉동 군만두에 맥주를 곁들이던 제 모습과는 아이러니하게 영화는 따뜻한 인사와 집밥으로 넘쳐났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 질투를 느낄 만도 한데, 그런 유치한 감정을 잊을 정도로 온기가 스며든 영화 덕분에 건조한 마음을 촉촉하게 적실 수 있었습니다.
머위 밥, 산달래 파스타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야생초로 만든 제철 요리처럼 작품 자체도 굉장히 담백한 맛을 자랑합니다. 일본산 로맨스물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던 제가 흐뭇한 표정으로 작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아주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것도, 화려한 요리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키워가는 두 주인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식물도감> (미키 코이치로, 2016)
주인공 '사야카'는 부동산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 여성입니다. 지친 그녀를 반기는 것은 우편물과 냉기가 도는 집. 직장에서 있었던 안 좋은 일도, 외로움도, 허기도 달래줄 이가 없어 더욱 기운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매일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눈을 붙이죠.
그런 그녀에게 6개월만 신세를 져도 되겠냐며 '이츠키'라는 남성이 찾아옵니다.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남자를 집에 들인다는 허무맹랑한 전개로 시작되는 영화이지만 이 특이한 만남 덕분에 사야카의 일상은 깜깜한 검은색에서 생기 넘치는 초록빛으로 물들어갑니다.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한 채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사람을 만나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똑같은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쳇바퀴 도는 일상을 살아왔던 사야카에게 자신을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되어줍니다. 이츠키 덕분에 전에는 몰랐던 계절의 아름다움, 꽃의 이름, 하늘의 색을 알게 된 사야카는 이제 매일매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죠.
花の名前も 空の広さも
꽃의 이름도 광활한 하늘도
あなたが教えてくれたことで
네가 알려준 거라서
愛と呼べるもの 分かった気がする
사랑을 알게 된 것 같아
<식물도감> 주제가 flower <やさしさで溢れるように> (따뜻함이 흘러넘치도록) 中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래 연애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대신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던한 척 모든지 혼자 해결하려고만 했던 사야카지만 그녀도 누군가가 챙겨주는 아침상이나 퇴근길 마중 나와 작은 선물을 건네는 상냥함이 그리웠을 겁니다. 혼자여도 괜찮다며 몇 번을 다독여도, 나를 생각해주는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있다는 게 더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을 두 배로 만들어주고 힘든 일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느 한약방에서 "엄마의 건강은 아빠가, 아빠의 건강은 엄마가"라는 문구를 본 적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좋더라.
<우리는 사랑을 사랑해> 김종완, 75pp.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 이름과 꽃 하면 바로 떠오르는 유명한 시인데요, <식물도감>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등장합니다. 뒷 베란다에 난 풀을 바라보며 잡초에도 이름이 있는 줄 몰랐다는 사야카에게 이츠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름 없는 잡초란 없어. 모든 풀에는 이름이 있어"라고 말이죠.
누군가가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었던 적이 언제였을까요? 스물셋 쓸데없는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 모든지 혼자 할 수 있다고, 세상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겠노라 행동했던 시절, 억척스러운 제 모습 때문인지 제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이름 대신 '안 상'이나 '저기요'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탓인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아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 사야카 역시 '부동산 회사 말단 직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을(乙)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사회에서 받던 을의 취급은 그녀를 점점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야카는 자기를 아낄 줄 모르며 그저 그런 음식을 먹고 그저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하지만 다정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츠키를 만난 이후, 사야카는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갑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사람과 좋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아끼는 방법을 터득하죠.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을 만났을 뿐인데 사야카의 일상이 초록빛으로 물드는 걸 보니 행복이란 특별한 게 아니라 별 거 아닌 소소함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고양이는 이름이 많았어. 사람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지어 불러줬는데 열 개도 넘었지. 사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아무래도 좋았어 고양이는.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준다는 건 아무튼 사랑한다는 의미니까., 고양이는 어떤 이름이든 사랑받으면 그걸로 좋았던 거야.
<우리는 사랑을 사랑해> 김종완, 81pp.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절 왜 그렇게 나를 아끼지 못했는지 후회됩니다. 따뜻할 수 있었던 시간을 삭막하게 보냈던 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조금 더 저를 아끼고 조금 더 저를 위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금 유해졌다고 해야 될까요? 스물셋 과거의 저와 비교하면 지금 전 따뜻함에 둘러 쌓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피곤하고 가끔 짜증이 나고 때때로 눈물이 나긴 하지만 그것들을 금방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죠.
내가 처한 상황이 힘들다고 나까지 힘들어질 필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마음먹기에 따라 바뀌는 게 상황인데 말이죠. 그러니까 힘들다고 너무 우울의 늪에 나를 빠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고유한 색을 가진 특별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힘들 때는 주위에서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조금만 기분 좋아지자. 공기 좋은 저녁 걷고 싶을 만큼 걷다가 앉기 편한 곳에서 청량하게 맥주를 마시고 맛있는 것을 나눠먹자. 서로의 걱정을 들어주고 대화를 나누다 돌아올 땐 택시를 타자.
<우리는 사랑을 사랑해> 김종완, 29pp.
From. 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