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인생 4화-스펙에 관하여
저는 고스펙자 (줄여서 고자)입니다. 외고 나와서 해외 4년제 대학 졸업했습니다. 토익은 950이 넘고 자격증도 6개가 넘습니다. 그런데 지금 걷고 있는 길이나 받는 돈을 보면 과연 내가 고스펙자가 맞나 싶을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판교 신혼부부 짤로 돌아다니고 있는 고경표 님과 서현 언니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연애를 할 때 상대방과 나의 경제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더군요. 뽀뽀하고 싶으면 뽀뽀하고 놀러 가고 싶으면 놀러 가고 친구들 모임 있으면 같이 나가고 그렇게 구김살 없이 사랑하기에는 이십 대 중반은 애매한 나이입니다.
연애에 있어서도 그렇고, 취업에 있어서도 애매한 고자들이 있을 곳이란 없습니다. 눈들은 높아서 조건이 조금이라도 안 맞는다 싶으면 쳐다보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이나 ‘사’ 자 들어가는 시험에 턱턱 합격하는 게 쉬운 것도 아닙니다. 이십 대 초반에는 저와 함께 방황하는 고자 친구들을 믿고 화려한 생활을 즐겼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력서를 수십 통씩 쓸 때쯤 깨달았습니다. 학력이나 자격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최고의 스펙은 짬밥, 경력이라고요.
고등학교 동창들에게는 대학 시절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다니고, 모든 사람들이 4년제를 졸업했을 거라는 가정하에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옮기고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며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목표로 살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 업계/직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의 척도로 결정되는 거지 결코 스펙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빨리 경력이나 쌓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이들의 땀과 노고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간사이 공항은 기회의 바다였습니다. 나이, 국적, 성별 상관없이 먼저 입사해 경력을 쌓은 사람이 진급하는 투명하고도 공평한 인사 체계 덕분에 나이 먹은 꼰대도 없었습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무서운 목소리로 소리 지르는 인차지 (incharge; 책임자. 카운터 인차지, 게이트 인차지 등이 있습니다.)가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에 놀라고, 첫 트레이닝부터 반말하던 사람이 나랑 동갑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공항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학력이 아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혹은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사회에 발을 디딘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이는 어려도 경력이 오래된 선배들이 많았고 이 때문에 다른 동기 언니들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저야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셋 사회 초년생인지라 아무 이유 없이 하대를 당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다른 데서 한 가닥 하다가 공항으로 온 언니들은 달랐습니다. 사회생활 경력도 꽤 되고 나이도 어느 정도 있는데 한참 어린것들이 일본어로 반말 찍찍하면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게 가끔은 참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비행기가 간사이 공항 관제탑 레이더에 잡히기 전이나, 현지 공항에서 비행기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한가한 시간이면 같은 부서 선배들은 저에게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기보다는 시기와 질투, 텃세가 잔뜩 섞인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4년제 나왔다더니 왜 공항으로 온 거야?”
“영어 엄청 잘하네? 한국인이라 그런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받아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았습니다.
“그래요, 저 광고 회사 100군데 넣었다가 다 떨어져서 하향 지원해서 여기 왔네요.”
“초등학생 때 미국에서 살긴 했었는데 발음은 그냥 한국인이라 좋은가 봅니다."
베베 꼬인 시선에 화가 나서 신입 시절에는 미친 듯이 공부만 했습니다. 원래는 대충 일하면서 일찍 끝나는 날에는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다른 회사도 알아보려고 공항에 들어간 거지만, 여객부 대신 운항 관리 부서에 배속된 시점에서 계획은 물 건너간 겁니다. 쉬는 날이면 근무 중 괴발개발 적은 내용을 다시 업무 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걸 ‘あんちょこ’ (안쵸코)라고 부르는데, 10년 차 선배도 게이트나 카운터로 향할 때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언제 어떤 이레귤러가 터질지 모르는 게 공항인지라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겁니다.
휴일에는 안쵸코를 보며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그리고 출근해서 어싸인된 항공기를 확인한 뒤에는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한 번 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립니다. ‘일단 MVT 먼저 뽑고, 시간 많이 늦으면 게이트 변경 전화를 해야겠지... 체크인 시작하기 전에 결정 났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요.
의도가 빤히 보이는 빻은 질문이 듣기 싫어서 한 2개월 고생하며 공부한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OJT를 졸업해 혼자 게이트에 가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퇴사자가 발생하고 신입이 들어올 정도로 인력 교체가 심한 게 공항인지라 후배도 금방 생겼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지났지만 후배들 데리고 다니면서 OJT를 시켜줄 정도로 인정받았습니다.
운전할 수 있는 후배랑 다니면 게이트 도착도 빠르고 무거운 짐 들고 다닐 일도 없어서 좋습니다. 게이트 가서도 옆에서 구경하다가 뭐 하나 잘못하면 고쳐주면 됩니다. 한 마디로 꿀 빠는 거죠. 후배들은 저 보다 8살은 더 많았는데, 고작 몇 개월 일찍 들어왔다고 뒤에서 감시하는 이십 대 초반 외국인 여자애를 보며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도 참 꼰대입니다.
하지만 선배, 동기, 후배 할 것 없이 제가 그냥 그 자리에 올라간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다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었습니다. 무전으로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이름 대신 '오퍼레이션'으로 부르던 램프 (RAMP) 아저씨들도 나중에는 대답도 꼬박꼬박 해주고 '안 상'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역시 최고의 스펙은 짬밥인 것 같습니다.
어딜 가나 고스펙자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고자가 빛이 나는 건 인정받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기 때문이지, 그냥 타고나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끔은 마음 편하게 스펙을 숨기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능력에 따른 대우를 해주고 노력한 자에게 보상을 주는 간사이 공항의 투명 명료한 시스템이 그립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바닥에서 얼마나 뒹굴고 산전수전 겪었는지인데, 가끔가다 학벌이니 라인이니 이상한 타령 하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모습을 볼 때면 딱 시급만 받고 일하던 시절이 쓸데없는 고민 없이 깔끔했던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