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번뇌를 0으로 만들고 보노보노 상태가 되는 것

시급 인생 8화-휴직에 관하여

by 가람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사람을 고문시키는 방법 중 가장 간단한 게 잠을 안 재우는 거랍니다. 확실히 매일 야근 후 5시간 자고 출근하니까 사람이 예민한 고라니가 되더군요. 조금만 심기가 불편하면 콧구멍을 드릉드릉거리며 받아 칠 준비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반성도 했지만 잠 못 자서 짜증 나는 건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주말에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온순해집니다. 혼자 쭈그리고 앉아 주말 내내 글을 쓰다 보면 몸이 근질근질해지며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약간 듭니다. 인간은 적당한 휴식과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나 봅니다.


휴식도 길어지다 보면 금세 지칩니다. 잦은 야근과 최저임금보다도 못한 월급에 화가 나 아무런 대책 없이 전 회사를 그만두었던 걸 너무나도 후회 중입니다. 물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홧김에 월요일 출근길 버스에서 팀장님에게 면담할 게 있다고 카톡을 보냈겠죠. 한 2주 정도는 정말 이불속에서 죽어도 좋을 정도로 행복했지만 그 뒤로는 점점 사람이 타성에 젖어가더니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에는 휴식이 끝나도 다시 향할 곳이 있다는 담보 덕분에 맘 놓고 쉴 수가 있지만 기약 없는 긴 무급 휴직은 사람을 괜히 보잘것없게 만듭니다. 이래서 연예인들이 공백기를 두려워하나 봅니다.


자발적 퇴사를 해도 공백기가 길어지면 우울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 마련인데 휴직을 강요당한다면 무력감은 더욱이 커지겠죠. 올해 상반기에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까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동이 줄어들면서 타격을 입은 건 항공 업계와 여행 업계, 그리고 학원 등 대면이 필요한 업종입니다. 임대료를 못 내는 개인 가게는 떨어진 매출에 등 떠밀려 문을 닫고 대기업 임원들은 자진 사퇴를 하고 직원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무기한 자택 대기 통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위자드 오브 이즈미사노


저 역시 간사이 공항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 달 가까이 일을 쉬며 신변을 걱정했던 적이 있습니다. 천재지변의 나라 일본 생활 5년 차에 접어드니 웬만한 스케일 아니고서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지만 태풍 21호는 달랐습니다. 공항을 직격탄으로 때리고 지나간 이 태풍은 우리 파견직 맨션의 전기, 수도 등 라이프라인과 공항으로 향하는 유일한 연결수단인 다리를 끊어 놓았습니다.


태풍이 오기 전 날 쉬는 날이라 다행이었지, 근무일이었으면 공항에 일주일 가까이 갇혀 있을 뻔했습니다. 화물 보관하는 곳이며 비행기 주차장 (SPOT), 활주로, 사무실 할 것 없이 물에 잠겨 당연히 모든 비행 스케줄은 캔슬되었습니다. 핸들링할 항공기가 없으니, 아니 공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가 막혀버렸으니 출근을 할 이유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무기한 자택 대기 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리난 공항과 통행금지된 공항으로 가는 길


식량 비축하러 잠깐 나왔는데 동네도 멀쩡한 곳이 없습니다


'여긴 완전히 파괴된 것처럼 보이네요'가 아니라 다리도 전깃줄도 두동강났습니다


오피스에 갇혀 있던 선배에게서 온 전화. 첫마디는 “안 상, 살아있어?”였습니다. 그 한 마디에 이번 사태가 예삿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는 불도 안 들어오고 식량도 동이 나간답니다. 그러더니 사태가 진정되고 다리가 복구될 때까지는 집에서 대기하라고, 임금 같은 건 파견 회사에 문의하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같은 맨션에 살던 한국인 언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행히도 다들 밤낮이 뒤바뀐 시프트 탓에 돈 쓸 시간도 없어 통장에 쌓여 있는 게 돈입니다. 일단 생활비 걱정은 덜었습니다. 다들 공항 일이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매일 10시간 이상 근무와 새벽 퇴근에 지쳐 있던 터라 솔직히 웃음이 샐샐 흘러나왔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일말의 웃음거리를 찾아내는 게 한국인의 힘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해답을 찾아냅니다. 세찬 바람에 베란다 창문이 깨질 것 같아서 여권과 통장만 챙겨 물도 불도 안 들어오는 방 한가운데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던 중 같은 맨션에 살던 언니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몇 블록 떨어진 언니네는 물도 나오고 에어컨도 나오니 잠잠해질 때쯤 거기로 피신을 가자는 겁니다. 우리 셋은 날아갈 새라 손 꼭 붙잡고 30분을 걸어 동 언니네 집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누가 이 언니 와인 오프너 좀 사주이소


술도 빠질 수 없죠. 우리 넷은 휴가인 듯 휴가 아닌 무급 휴직을 기념하며 대낮부터 비빔면을 안주로 와인을 까고 누워서 회사 욕만 실컷 했습니다. 저녁쯤 파견 회사에 전화해 호텔비를 받아내 그날 밤은 호텔에서 묵었습니다. 남의 돈이니 물론 조식 포함시켜서 배부르게 먹고 다음 날 집으로 향했습니다.


호텔 조식으로 시작된 무급휴가


라이프 라인 복구는 하루 만에 이루어졌지만 갑자기 직업을 잃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전철, 버스 모두 운행 중지가 되어 놀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다들 공항에서 주는 미칠듯한 시프트에 지쳐있었기에 긴 휴가를 받았다 생각하고 방탕한 생활을 2주 가까이 이어 나갔습니다. 우리 넷은 오후 5시쯤 일어나서 대충 씻고 샹소니에팔레스 3층 맨 끝 방에 모여 밤새도록 술 마시고 놀았습니다. 수련회 온 여자 애들처럼 므훗한 얘기도 하면서 낄낄거리다가 브라 풀고 포커도 치고 치킨도 튀겨 먹었습니다.






출근해도 할 게 없습니다


즐거운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시급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해졌습니다. 임금에 관해 문의하니 파견 회사에서는 ‘일단 사태가 진정된 뒤 내규에 따라 처리해주겠다’는 두루뭉술한 대답만 내놓았고 정직원 언니들은 정말 땡전 한 푼 못 받을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공항으로 향하는 다리 복구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즈음 오피스에서 호출이 왔지만 핸들링할 항공기가 별로 없어서 이면지 만들어 분쇄하는 게 주 업무였습니다. 189명 타는 보잉기 한 대에 20명밖에 안 타서 밸런스 맞추는 데 쪼금 애먹긴 했지만 그게 다입니다.


태풍 21호 이후 첫 출근 하던 날


태풍 21호 이전으로 원상 복구되기까지는 한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언제 또 이런 천재지변이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죠. 실제로 공항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또다시 무력하게 무릎을 꿇어야 했고요. 간사이 공항에 남아있던 동료들 중 파견직은 올해 상반기에 이미 해고 통보를 받아 그나마 남아있는 건 정직원 몇 명뿐이라고 합니다.






농담 조금 첨가해 해학적으로 풀어낸 태풍 21호 이야기지만 이 태풍으로 인해 공항과 주변 마을은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으며 실종된 분들, 목숨을 잃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항공 업계가 시즌이나 경제 상황에 따라 기복이 심한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설마 제가 그 영향을 받으리라는 생각은 못 했던 터라 휴직 통보를 받았을 때는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긴 휴식 기간 매일 침대에 누워 배 위에 손을 올린 채 보노보노 자세로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앞으로 이런 사태가 또 찾아와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공항에 애정이 있는가' 생각을 해봤는데 마음은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길 잘한 거 같습니다. 사람들이 왜 철밥통 공무원을 선호하는지도 알게 되었구요. 언제 또 휴직 통보를 받을까 두려워 고민하는 것보다는 글꼴 하나 두고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고민하는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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